학기가 끝나간다.

2005년 4월 20일 at 10:13 am

이제 학기가 2 주 남았다. 이제 1주일 수업 하고 1 주일 기말고사 보면 끝난다. 잘 버텼다. 장하다 주군! 용하다 주군! 정말 외로웠는데 버텨내고야 말았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가족이 있고. 우리집에 내 방이 있고. 친구들이 있고. 학교가 있다. 놀러 갈 옛 직장도 있고 놀러 갈 동네도 많이 있다. 거의 끝나간다. 조금만 기다려라, 한국. 내가 갈께..

Halloween Day Party at Sarah’s

2005년 3월 21일 at 2:31 am

다음 중 누가 주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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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목도리를 잃어버렸다.

2004년 1월 19일 at 10:55 pm

내가 좋아하던 목도리를 잃어버렸다..

2000년 말, 게임을 구입하고 받은 목도리였는데 내 첫 목도리였고 꽤나 이뻤다.

그런 목도리를 잃어버려서 속상하다.

더욱 가슴이 아픈 건..

잃어버린 목도리에 이입된 나의 미묘한 감정이 나를 슬프게 한다..

오빠 오랜만~!

2003년 12월 21일 at 10:08 am

오랜만에 왔어요-

나 금방 한국가요!!!

음 맛있는거 사준다고 한 약속.. 꼭 지켜요!!!

히히.

완전 3일굶고 만나야겠다. 큭큭.

아 근데 정말 오빠도 이번학기 복학이냐고-

좀더 쉬다가 하지 그래요??

프로그래머의 주기도문

2003년 12월 8일 at 5:17 pm

프로그래머의 주기도문

하드디스크에 계시는 우리 프로그램이여.
패스워드를 거룩하게 하옵시고
운영체제에 임하옵시며,
명령이 키보드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모니터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일용할 데이터를 주시옵고
우리가 프로그램의 오류를 용서한 것과 같이
우리의 오타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바이러스에 들게 하지 마옵시며
다만 불시의 정전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속도와 파워와 안정성이 프로그램에게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엔터.

— 어디선가 펌

훈련 후기

2003년 12월 3일 at 12:19 am

=== 훈련을 마치고 ===
* 산업기능요원들은 훈련 후에 자대배치를 받지 않고 사회로 되돌아가 직장생활을 계속하기 때문에 군기도 좀 풀어주고 훈련도 약하게 시키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내가 갔던 27사단 신병교육대대는 그렇지 않았다.
* 이기자 부대로 알려져있는 27사단은 최전방이 아닌 그보다 뒤에 있는 지원부대여서 전시 전투가 주임무(최전방은 주임무가 경계. 전쟁 발발시 전투에 들어갈 틈도 없이 몰살)이기 때문에 그만큼 훈련을 많이 받고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곳에 있는 사병, 간부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 이기자 부대에는 10중대(흰색)와 11중대(노란색) 그리고 12중대(붉은색)가 있다. 내가 간 곳은 11중대였는데, 10중대는 모르겠지만 12중대는 정말 험하게 훈련을 시키는 곳이었다. 스님보다 짧은 머리와 일요일에도 들려오는 복창소리, 휴식시간이면 따가운 태양을 향해 쉬는 모습을 보면 정말 특공대 같다는 생각이다. 가기 전엔 12중대에 배치받아서 해병대 뺨친다는 그 훈련 좀 받아볼까 생각했지만 직접 목격한 뒤에는 그나마 11중대에 배치받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1중대! 물고 늘어져!
* 내 나이 스물다섯에 간 훈련소인데, 대략 기간병들은 어리고, 사관은 중위까지는 우리보다 어리거나 많아야 동갑이라고 보면 된다. 부사관은 중사의 경우 우리보다 어린 경우도 있고 나이가 많은 경우도 있다. 활동복을 입혀놓으면 그들도 어려보이지만 전투복을 입혀놓으면 우리보다 한 열 살은 많아보인다.
* 욕과 구타는 없다. 아니, 솔직히 욕은 있다. ‘친구를 보다’ ‘견의 후손’ 같은 욕을 종종 들을 수 있다. 얼차려는 종종 받는다. 특히 간부가 화가 났을 때 조교들이 우리에게 얼차려를 준다. 하지만 그 정도는 그 유명한 선덕사에서도 많이 당해봤다. 오히려 선덕사에 비해 구타가 없으니 좀 더 낫다.
* 힘든 훈련은 4주차에만 조금 있다. 훈련보다 힘든 것은 통제에 따르는 것이다. 처음에는 다들 변비에 걸리고 나중에는 다들 휴지가 부족해서 쩔쩔맨다. 가끔 손수건으로 뒤를 닦고 빠는 훈련병들도 있다. 씻지도 못하고 어디에 몸을 기대지도 못한다. 점호시간에 앉아있는 것도 다리가 아프다.
* 건강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누구나 다 모든 훈련 소화해낼 수 있다. 유격이나 야간행군 같은 힘든 훈련도 끝난 후에 한 번 씩 웃어주면서 별거 아니네~ 하면 된다. 그러나 힘들다고 짜증내지 말자. 짜증은 전염성이 있다. 웃어주자.
* “충성!” 구호는 절대 없다. “이기자!”라고 외쳐야 한다. 소리는 무조건 크게 질러야한다. 아무리 악을 써도 조교들이 소리 작다고 굴린다.
* 감기는 다 걸린다고 보면 된다. 우리는 2주차 초에 주간행군할 때 비 맞고 대부분 걸렸다. 비를 맞아도 씻지를 못하니 감기 정도는 걸리는 게 당연하다. 감기가 아무리 심해도 감기약 하나 얻어먹기 힘들고 군대 감기약은 먹어봐야 별 효과도 없다. 나는 밥 먹고 나서 씻지도 않는 취사장 컵으로 항상 물을 마셨는데 그래서인지 퇴소 후에 폐결핵 혹은 폐렴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옆에 12중대는 면도기를 돌려쓰는데 면도기 돌려쓰다가 피를 통해 에이즈에 감염되어 병원으로 후송된 훈련병도 있었다. 정말 불쌍하다.
* 1주차에는 군대예절과 제식훈련, 도수체조 등을 배운다.
* 군대예절은 연병장에 앉아서도 듣지만 그보다는 막사 안에서 분대장에게 얼차려 받아가면서 몸으로 배우는 것이 많다.
* 도수체조는 국민체조처럼 군대에서 하는 체조인데, 나처럼 기억력 나쁜 사람도 순서 안 외우고 다른 사람들 하는 것 정도만 따라해도 문제 없다.
* 제식훈련은 행진 연습 같은 건데 처음 들고 다니는 총이라 조금 무겁다. 하지만 나중에는 총이 무겁지 않게 느껴진다.
* 2주차에는 주간행군을 하고 화생방과 각개전투 훈련을 한다.
* 주간행군은 15km로 산을 하나 넘은 후 포장된 도로로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무척 숨이 찬다. 하지만 방독면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건빵과 맛스타를 생각하면 든든하다.
* 화생방은 듣던 소리와 달리 그리 힘들지 않았다. 화생방이 유격보다 힘들다느니 차라리 죽고 싶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어서 많이 긴장했는데, 들어가보니 그저 눈이 맵고 콧물이 줄줄 나오고 침이 땅바닥까지 늘어지면서 호흡이 조금 고통스럽다뿐이지, 그곳에도 산소가 있는지라 숨은 쉬어진다. 그저 마음을 편히 가지면 견딜만하다. 하지만 개중에는 뛰쳐나가는 사람, 기절하는 사람, 못 들어가겠다고 버티는 사람도 있다.
* 각개전투는 포복하고 뛰어다니고 하면서 산 위 고지를 점령하는 전투 훈련인데 산 위에 고지를 두 번 정도 점령하면 숨이 꼴딱꼴딱 찬다. 하지만 으아악~ 소리 지르면서 뛰어다니고 기어다니고 하는 것이 의외로 재미있다. 고지에서는 타이어를 총으로 치고 발로 차고 하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나는 남들보다 3~4 배 정도 더 차고 찔렀다. 하다보면 전투복이 많이 찢어진다.
* 3주차는 사격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격이다. 피나고 알베기고 이가 갈린다는 PRI(사격술기초훈련)를 받고 영점사격과 기록사격을 한다. 총의 조준점이 총마다, 사람마다 조금씩 틀려서 총을 사람에게 맞추는 영점사격을 해야되는데 이것이 잘 안 되면 기록사격도 힘들다. 처음에 사격하는 거 옆에서 보면 총소리가 너무 커서 움찔움찔거리고 저렇게 시끄러운데 어떻게 총을 쏘나 싶지만 직접 쏴보면 그냥 빵 빵 소리 정도로만 들린다. 군대 밖에서도 사격을 하는 일이 종종 있지만 그때는 가까운 표적만 쏘지만 군대에서는 250m 밖의 표적도 쏴야 하기 때문에 시력이 좋아야 한다.
* 4주차에 접어들면 거의 다 끝났다고 풀어지지만 고통은 지금부터다. 3주차까지는 힘들다고 해봐야 체력을 바탕으로 이겨낼 수 있는 훈련들이다. 그렇게 힘든 훈련은 없다. 하지만 4주차에 받는 훈련들은 체력에 부치기 때문에 정신력으로 버텨야 하는 훈련들이다. 야전상의를 벗고 내복도 벗고 영하의 날씨에 전투복만 입고 훈련을 받는데도 땀이 뻘뻘 난다.
* 유격은 진정한 고통이다. 난 유격 전에 조교들이 각오하라는 소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전 내내 수천번의 PT체조를 하고서는 유격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특히 8 번 온몸비틀기는 정말 힘든데 그래서인지 더 많이 시킨다. 수백번 시킨다. 나는 이날 상체훈련은 별로 힘들지 않다는, 하체훈련이 정말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중에 근육이 풀리면 뼈로 몸을 지탱해야 한다. 오전 PT체조가 끝나고 이제 다 끝났구다 오후에 장애물 넘기만 하면 되는구나 했지만 그것이 시작이었다. 장애물 넘기는 휴식기간이었고 그밖에는 끝없이 고통의 PT체조를 해야했다. PT체조였으면 괜찮은데 PT체조에도 없는 별별 얼차려를 다 받았다. 악 악 소리를 지르며 독기 어린 눈으로 조교를 바라보는데 정말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유격은 체력을 향상시키는 것이지만 체력으로 받는 것은 아니다. 모든 체력을 바닥내고 악으로 깡으로 독기로 받는 것이 유격훈련이다.
* 유격에서 소진된 체력을 채 보충할 틈도 없이 온통 알베긴 몸으로 야간행군을 시작한다. 방탄모부터 탄띠 소총 등 모든 장구류를 챙기고 다리에 차고 20kg이 넘는 군장을 메고 20km를 행군하는데 20km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멀다. 군장도 정말 무겁다. 지금까지 무겁게 느껴졌던 소총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우리 산업기능요원들은 그래도 빠른 속도로 행군하는데 이는 집에 간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끝없는 오르막길을 오르며 숨이 차서 할딱거리는데 그래도 이 고비만 넘기면 집에 간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오른다. 나처럼 한쪽 어깨로만 가방을 메는 사람은 군장 무게에 한쪽 어깨가 엄청 아프다. 오르막길을 다 오르면 살았다..라고 속으로 외치지만 고통은 그때부터다. 내리막길이 더 힘들다. 양말이 너무 커서 전투화 안에서 접히는데 내리막길에선 그게 밀려서 미끌미끌한다. 발도 더 아프고 군장도 더 무거워진다. 무릎에도 무리가 간다. 차라리 오르막길을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막사에 도착할 때쯤이면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만근이다. 그래도 똑같이 힘든 동기들이 있기에 열심히 걸어간다. 막사에 도착하면 라면을 끓여준다. 신라면을 국 끓이는 거대한 냄비에 끓이는데 정말 맛 없다. 이거 먹는 것도 고통이었다. 나는 그렇게 느꼈는데 다른 동기들은 다들 이렇게 맛있는 라면 처음 먹는다며 정말 맛있게 먹었다. 이 짜고 뿔어터진 라면이 뭐가 맛있다고.. 다음날 보면 2/3 정도는 발에 물집이 잡혀있다. 나는 걸으면서 많이 조심했기 때문에 물집이 생기지 않았다.
* 이제부터는 퇴소식 연습에 들어간다. 꼭 국기에 대한 경례할 때 “이기자!” 하고 경례구호 붙이는 애들이 있다. 계속해서 얼차려 받다보면 고쳐진다. 퇴소식 연습도 만만치 않게 힘들지만 그래도 마음은 이미 집에 가있다. 이때는 집에 간다는 마음에 복창소리도 더 커진다.
* 이때쯤이면 휴지가 정말 부족하다. 쵸코파이보다 휴지가 더 귀해지게 된다. 휴지가 없어서 똥을 못 쌀 지경이다.
* 퇴소식을 하고 마중 나온 부모님과 집으로 왔다. 미리 쵸코파이와 우유를 사오라고 연락한 터에 차 안에서 쵸코파이와 우유를 마시면서 갈 수 있었다. 안에서 그렇게 먹고 싶었지만 2~3 개 먹으니 질려버렸다.
—-
* 1주차 : 군대예절 및 제식훈련
* 2주차 : 각개전투 및 주간행군, 화생방(★★)
* 3주차 : 사격
* 3주차의 잠꼬대 : “8사로 이상 무!!!”
* 4주차 : 유격훈련(★★★★☆) 및 야간행군(★★★★★)
* 4주차의 잠꼬대 : “행군은 이미 했단 말입니다!!!”
* 가장 끔찍했던 음식 : 쌀국수(제2의 화생방)

훈련소 입소합니다.

2003년 10월 27일 at 12:38 am

2003/10/27.. 오늘 강원도 화천에 있는 이기자에 입소합니다.

2003/11/22 퇴소합니다.

몸 건강히 훈련 잘 받고 튼튼하고 날씬해져서 나오겠습니다.

기다려주세요!!

디지탈 TV 송출 방식

2003년 10월 25일 at 9:39 am

2002년 월드컵을 HDTV로 즐기기 위해 컴퓨터에 HDTV 카드를 달았고, 마루에도 HDTV를 샀다.
그렇게 HDTV 를 보게 된 지 어언 2년이 흘렀다.

아무래도 미국식 HDTV의 장점은 저 선명한 화질이다. 1920*1080i라는 놀라운 해상도에서 나오는 화면은 땀구멍 하나하나까지 보일 정도로 무척 섬세하다.

사실 미국식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것이 LG전자에서 주도해서 만든 것인지라 한국식이라고 부르자는 의견도 있다.

유럽식의 장점은 이동수신이 가능하다는 것과 표준화질로 방송하기 때문에 채널 수가 많다는 것이다.
고화질 방송도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어느만큼 세월이 흘러야 가능하게 될런지 알 수가 없다.

방송사들은 죽어라고 유럽식을 외치고 있다.
유럽식이 아니면 방송사들은 죽어날지 모른다.

단 1개의 채널에서 같은 광고료 받고 하는 방송인데, HDTV 전송 장비를 갖추려면 무척 많은 돈이 들고, 컨텐츠 제작도 힘이 들게 된다.

SDTV 방송을 하면, 원래 하던 방송 계속 하면서 스포츠 채널도 하나 만들고 홈쇼핑 채널도 하나 만들고 해서 광고료도 더 많이 받고 기존 장비 그대로 써서 방송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방송사들은 미국식이 아니라 유럽식이어야 된다고 투쟁을 하고 있다. 국민들은 방송만을 보기 때문에 그게 옳은지 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많은 채널보다 고화질을 원한다!! 고화질!! HDTV로 보는 영화는 정말 입이 쩍쩍 벌어지게 한다. 고화질을 보여달라!!

마시고 죽었다.

2003년 10월 25일 at 9:36 am

그저께 훈련 들어간다고 환송회를 했다.

고깃집 가서 백세주로 사람들하고 한 잔씩 돌리고
호프 가서 소주 여섯잔 앞에 탑으로 쌓아놓고 마셨는데..

그때 시각이 10시 30분 정도, 그 후로 기억이 없다.
꽤나 늦게까지 마신 모양인데 눈을 떠보니 재원이형네 집이었다.

하루종일 끙끙 앓다가 4시가 안 되어 출근했다.
계속 괴로워서 휴게실 가서 자다가 5시 반쯤 퇴근해버렸다.

훈련 들어가기 전에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만나서 마시려 했는데
생각이 싹 가시었다. 이제 좀 몸조심을 해야겠다.

서울 성북동에서

2003년 10월 20일 at 1:00 pm

인터넷 주소를 잘못 쳐서 들어간 어느 경제부 기자의 홈페이지, 그냥 잘못 쳤구나 하고 나가려던 순간에 들어온 “서울 성북동에서”라는 글. 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터라, 어서 클릭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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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동에서

요즘 강남구 삼성동의 한 빌딩에선 송두환 특별검사팀이 ‘대북송금의혹 사건’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저는 경제부에 속해 있지만, 옛날에 검찰출입을 해봤다는 등등의 이유로 약 2주정도 사회부에 파견을 갔었습니다.

‘수사’라고 하는 것이 항상 그렇지만, 관련자들은 모두 진실 그 자체와 진실의 내막을 잘 알고 있는데 어떤 이유에서건 그 진실을 밝히기를 꺼려 하는 입장이고, 반대로 수사팀이나 그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든 진실을 밝혀야 하는 입장입니다.

수사는 아직 초기 단계이고, 그래서 저는 정몽헌 회장이 “5억달러를 보냈다”고 밝혔으면서도, 산업은행에서 대출받은 돈 4천억원 가운데 2천2백억원(약 2억달러) 외에 나머지 3억달러를 어떻게 조성했는지에 대해 밝히지 않았다는점을 파고들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그 나머지 돈이 현대전자, 현대건설 등에서 조성됐다는 소문은 있었지만, 정몽헌 회장이나 현대측에서 이를 확인해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가지 고민 끝에, 전 정몽헌 회장을 직접 괴롭히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어찌보면 아주 가능성이 희박한, 한마디로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열쇠를 쥐고 있는 이익치씨나 김충식씨에 대해서도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있는지 여러 경로를 통해 노력을 해봤지만, ‘당분간 어렵다’는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괴롭히는 방법’. 뭐 별난 방법도 아닙니다.

정몽헌 회장의 집, 사무실 등에서 죽치고 기다리면서, 매번 정회장을 만날때 마다, 같은 내용의 질문을 계속 하는 겁니다.

아주 원시적인 방법이었지만, 의외로 단기간에 성과가 있었습니다. 정회장의 최 측근으로부터 관련된 얘기를 확인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정몽헌 회장을 밀착마크 하면서, 취재와는 별도로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바로 ‘성북동’엘 가봤다는 것이죠.

제가 정몽헌 회장의 집을 찾아간 것은 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지난 4월22일이었습니다.

처음엔 주소만 갖고 있어서, 집을 못찾는 것은 아닌가 걱정을 했습니다. 물론 보통 동네에서야 주소만 알면 근처 복덕방엘 가서 확인해 보면 금방이지만 그 동네는 워낙 큰 길가와 떨어져 있는데다가 인적이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몇분 지나지 않아 정회장의 집을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대문은 수수하게 달려있지만 워낙 땅 덩어리가 크고, 바로 옆 일본대사관저 문앞을 지키는 의경들이 확인을 해줬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집을 찾는 와중에는 찾는 일 자체가 중요했기 때문에 주위 풍경이나 이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단 확인을 하고 나니 주위를 둘러보게 되더군요.

성북동에선 항상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만금 각 집들의 정원이 잘 꾸며져 있다는 얘기겠죠. 담이 높아 안을 들여다 볼 수는 없었지만, 정몽헌씨 집에도 제법 굵은 나무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었습니다.

두번째론 사람을 구경하기가 참 여렵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오가긴 합니다. 그런데 민간인은 아니죠. 그 근처에 일본, 독일 등의 대사관저가 있어서 그렇겠지만, 약 1시간에 한번씩 의경들이 순찰을 돕니다. 순찰차도 일정한 시간에 한번씩 나타나 점검을 하더군요.

사람들이 나다니지 않는 만큼, 성북동은 무척이나 조용합니다. 오후 5시 정도엔 어느 절에서 울려오는지 알 수 없지만 은은한 종 소리가 들렸습니다.

지나다니는 차들은 사람에 비해선 많았습니다. 대부분 최고급형들이었습니다. 가끔 소나타나 아반떼 같은 차들도 길가에 세워져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집에서 일을 도와주시는 분들이 출퇴근 용으로 사용하는 차였습니다.

그 근처에는 5손가락 안에 꼽히는 모 재벌가의 집도 있었습니다. 그 집 경비를 맡고 있는 20대 후반의 남자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여기엔 걸어다니는 사람을 진짜 보기 어려워요.. 그런데 아주 가끔 보이기도 하는데요.. 딱 2가지라고 보면 되요.”

“2가지가 뭔데요?”

“하나는 집주인이 아니라 일 봐주시는 분들이 출퇴근 하는 경우, 그리고 또 하나는 아주 드물게 ‘마을 산책’에 나서는 분들이죠..”

“여기는 정말 강남하고는 비교가 안되는 곳이죠. 강남엔 왜 갑자기 큰 졸부들이 많다쟎아요.. 여기는 그야말로 전통있는 부자들이 살아요. 강남에 사는 사람들중에 이곳으로 이사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대요.. 그런데 돈이 있다고 해도 집을 구하기가 정말 쉽지 않죠.

부동산은 저쪽 저 아래에 있는데요, 여기 부동산집 사장들도 대부분 차는 포텐샤 급으로 타고 다녀요.”

난 우산도 외투도 없는데 무심하게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검은색 양복이 축축하게 젖어오고 내가 얼마나 더 기다릴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집집마다 대문앞에 버티고 선 개들은 컹컹컹컹 짖어댔습니다.

“여기 개들도 장난이 아니에요, 지난 번엔 정회장댁 개와 우리개가 요 앞 길에서 난투극을 벌였는데 우리 개가 목이 물려 피가 철철 나고 난리가 났죠. 그래서 우리집에 개를 2마리 더 사다 놨지 뭡니까…”

근처의 한 집에서 젊은 여성 1명이 대문 밖으로 나왔습니다.

노란 상의에 노란 우산을 쓴 그 여인은 집 앞에 세워져 있던 최고급형 승용차 운전석을 열었습니다.

빗줄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늘었지만, 그 여인은 그 가는 빗방울이라도 맞을 수 없다는 듯, 한쪽손은 우산을 그대로 받친 상태에서 아주 우아하고 세련된 동작으로 미끄러지듯 차 운전석에 올라탔습니다.

내 몸에 내려앉은 빗방울들이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집에서 일을 봐주시던 분들도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고 성북동에도 밤이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첫날 진드기작전은 별로 성과가 없었던 것이죠.

돌아가는 길에 성북동 집들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종합해서 생각해 보면 결국은 ‘야.. 좋다 이런데서 한 번 살아보면 좋겠다’는게 솔직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을 것이란 점은 분명하고, 그래서 성북동 큰 집들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조금은 삐뚤어져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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