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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후기

  • 기준

=== 훈련을 마치고 ===
* 산업기능요원들은 훈련 후에 자대배치를 받지 않고 사회로 되돌아가 직장생활을 계속하기 때문에 군기도 좀 풀어주고 훈련도 약하게 시키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내가 갔던 27사단 신병교육대대는 그렇지 않았다.
* 이기자 부대로 알려져있는 27사단은 최전방이 아닌 그보다 뒤에 있는 지원부대여서 전시 전투가 주임무(최전방은 주임무가 경계. 전쟁 발발시 전투에 들어갈 틈도 없이 몰살)이기 때문에 그만큼 훈련을 많이 받고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곳에 있는 사병, 간부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 이기자 부대에는 10중대(흰색)와 11중대(노란색) 그리고 12중대(붉은색)가 있다. 내가 간 곳은 11중대였는데, 10중대는 모르겠지만 12중대는 정말 험하게 훈련을 시키는 곳이었다. 스님보다 짧은 머리와 일요일에도 들려오는 복창소리, 휴식시간이면 따가운 태양을 향해 쉬는 모습을 보면 정말 특공대 같다는 생각이다. 가기 전엔 12중대에 배치받아서 해병대 뺨친다는 그 훈련 좀 받아볼까 생각했지만 직접 목격한 뒤에는 그나마 11중대에 배치받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1중대! 물고 늘어져!
* 내 나이 스물다섯에 간 훈련소인데, 대략 기간병들은 어리고, 사관은 중위까지는 우리보다 어리거나 많아야 동갑이라고 보면 된다. 부사관은 중사의 경우 우리보다 어린 경우도 있고 나이가 많은 경우도 있다. 활동복을 입혀놓으면 그들도 어려보이지만 전투복을 입혀놓으면 우리보다 한 열 살은 많아보인다.
* 욕과 구타는 없다. 아니, 솔직히 욕은 있다. ‘친구를 보다’ ‘견의 후손’ 같은 욕을 종종 들을 수 있다. 얼차려는 종종 받는다. 특히 간부가 화가 났을 때 조교들이 우리에게 얼차려를 준다. 하지만 그 정도는 그 유명한 선덕사에서도 많이 당해봤다. 오히려 선덕사에 비해 구타가 없으니 좀 더 낫다.
* 힘든 훈련은 4주차에만 조금 있다. 훈련보다 힘든 것은 통제에 따르는 것이다. 처음에는 다들 변비에 걸리고 나중에는 다들 휴지가 부족해서 쩔쩔맨다. 가끔 손수건으로 뒤를 닦고 빠는 훈련병들도 있다. 씻지도 못하고 어디에 몸을 기대지도 못한다. 점호시간에 앉아있는 것도 다리가 아프다.
* 건강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누구나 다 모든 훈련 소화해낼 수 있다. 유격이나 야간행군 같은 힘든 훈련도 끝난 후에 한 번 씩 웃어주면서 별거 아니네~ 하면 된다. 그러나 힘들다고 짜증내지 말자. 짜증은 전염성이 있다. 웃어주자.
* “충성!” 구호는 절대 없다. “이기자!”라고 외쳐야 한다. 소리는 무조건 크게 질러야한다. 아무리 악을 써도 조교들이 소리 작다고 굴린다.
* 감기는 다 걸린다고 보면 된다. 우리는 2주차 초에 주간행군할 때 비 맞고 대부분 걸렸다. 비를 맞아도 씻지를 못하니 감기 정도는 걸리는 게 당연하다. 감기가 아무리 심해도 감기약 하나 얻어먹기 힘들고 군대 감기약은 먹어봐야 별 효과도 없다. 나는 밥 먹고 나서 씻지도 않는 취사장 컵으로 항상 물을 마셨는데 그래서인지 퇴소 후에 폐결핵 혹은 폐렴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옆에 12중대는 면도기를 돌려쓰는데 면도기 돌려쓰다가 피를 통해 에이즈에 감염되어 병원으로 후송된 훈련병도 있었다. 정말 불쌍하다.
* 1주차에는 군대예절과 제식훈련, 도수체조 등을 배운다.
* 군대예절은 연병장에 앉아서도 듣지만 그보다는 막사 안에서 분대장에게 얼차려 받아가면서 몸으로 배우는 것이 많다.
* 도수체조는 국민체조처럼 군대에서 하는 체조인데, 나처럼 기억력 나쁜 사람도 순서 안 외우고 다른 사람들 하는 것 정도만 따라해도 문제 없다.
* 제식훈련은 행진 연습 같은 건데 처음 들고 다니는 총이라 조금 무겁다. 하지만 나중에는 총이 무겁지 않게 느껴진다.
* 2주차에는 주간행군을 하고 화생방과 각개전투 훈련을 한다.
* 주간행군은 15km로 산을 하나 넘은 후 포장된 도로로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무척 숨이 찬다. 하지만 방독면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건빵과 맛스타를 생각하면 든든하다.
* 화생방은 듣던 소리와 달리 그리 힘들지 않았다. 화생방이 유격보다 힘들다느니 차라리 죽고 싶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어서 많이 긴장했는데, 들어가보니 그저 눈이 맵고 콧물이 줄줄 나오고 침이 땅바닥까지 늘어지면서 호흡이 조금 고통스럽다뿐이지, 그곳에도 산소가 있는지라 숨은 쉬어진다. 그저 마음을 편히 가지면 견딜만하다. 하지만 개중에는 뛰쳐나가는 사람, 기절하는 사람, 못 들어가겠다고 버티는 사람도 있다.
* 각개전투는 포복하고 뛰어다니고 하면서 산 위 고지를 점령하는 전투 훈련인데 산 위에 고지를 두 번 정도 점령하면 숨이 꼴딱꼴딱 찬다. 하지만 으아악~ 소리 지르면서 뛰어다니고 기어다니고 하는 것이 의외로 재미있다. 고지에서는 타이어를 총으로 치고 발로 차고 하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나는 남들보다 3~4 배 정도 더 차고 찔렀다. 하다보면 전투복이 많이 찢어진다.
* 3주차는 사격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격이다. 피나고 알베기고 이가 갈린다는 PRI(사격술기초훈련)를 받고 영점사격과 기록사격을 한다. 총의 조준점이 총마다, 사람마다 조금씩 틀려서 총을 사람에게 맞추는 영점사격을 해야되는데 이것이 잘 안 되면 기록사격도 힘들다. 처음에 사격하는 거 옆에서 보면 총소리가 너무 커서 움찔움찔거리고 저렇게 시끄러운데 어떻게 총을 쏘나 싶지만 직접 쏴보면 그냥 빵 빵 소리 정도로만 들린다. 군대 밖에서도 사격을 하는 일이 종종 있지만 그때는 가까운 표적만 쏘지만 군대에서는 250m 밖의 표적도 쏴야 하기 때문에 시력이 좋아야 한다.
* 4주차에 접어들면 거의 다 끝났다고 풀어지지만 고통은 지금부터다. 3주차까지는 힘들다고 해봐야 체력을 바탕으로 이겨낼 수 있는 훈련들이다. 그렇게 힘든 훈련은 없다. 하지만 4주차에 받는 훈련들은 체력에 부치기 때문에 정신력으로 버텨야 하는 훈련들이다. 야전상의를 벗고 내복도 벗고 영하의 날씨에 전투복만 입고 훈련을 받는데도 땀이 뻘뻘 난다.
* 유격은 진정한 고통이다. 난 유격 전에 조교들이 각오하라는 소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전 내내 수천번의 PT체조를 하고서는 유격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특히 8 번 온몸비틀기는 정말 힘든데 그래서인지 더 많이 시킨다. 수백번 시킨다. 나는 이날 상체훈련은 별로 힘들지 않다는, 하체훈련이 정말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중에 근육이 풀리면 뼈로 몸을 지탱해야 한다. 오전 PT체조가 끝나고 이제 다 끝났구다 오후에 장애물 넘기만 하면 되는구나 했지만 그것이 시작이었다. 장애물 넘기는 휴식기간이었고 그밖에는 끝없이 고통의 PT체조를 해야했다. PT체조였으면 괜찮은데 PT체조에도 없는 별별 얼차려를 다 받았다. 악 악 소리를 지르며 독기 어린 눈으로 조교를 바라보는데 정말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유격은 체력을 향상시키는 것이지만 체력으로 받는 것은 아니다. 모든 체력을 바닥내고 악으로 깡으로 독기로 받는 것이 유격훈련이다.
* 유격에서 소진된 체력을 채 보충할 틈도 없이 온통 알베긴 몸으로 야간행군을 시작한다. 방탄모부터 탄띠 소총 등 모든 장구류를 챙기고 다리에 차고 20kg이 넘는 군장을 메고 20km를 행군하는데 20km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멀다. 군장도 정말 무겁다. 지금까지 무겁게 느껴졌던 소총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우리 산업기능요원들은 그래도 빠른 속도로 행군하는데 이는 집에 간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끝없는 오르막길을 오르며 숨이 차서 할딱거리는데 그래도 이 고비만 넘기면 집에 간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오른다. 나처럼 한쪽 어깨로만 가방을 메는 사람은 군장 무게에 한쪽 어깨가 엄청 아프다. 오르막길을 다 오르면 살았다..라고 속으로 외치지만 고통은 그때부터다. 내리막길이 더 힘들다. 양말이 너무 커서 전투화 안에서 접히는데 내리막길에선 그게 밀려서 미끌미끌한다. 발도 더 아프고 군장도 더 무거워진다. 무릎에도 무리가 간다. 차라리 오르막길을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막사에 도착할 때쯤이면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만근이다. 그래도 똑같이 힘든 동기들이 있기에 열심히 걸어간다. 막사에 도착하면 라면을 끓여준다. 신라면을 국 끓이는 거대한 냄비에 끓이는데 정말 맛 없다. 이거 먹는 것도 고통이었다. 나는 그렇게 느꼈는데 다른 동기들은 다들 이렇게 맛있는 라면 처음 먹는다며 정말 맛있게 먹었다. 이 짜고 뿔어터진 라면이 뭐가 맛있다고.. 다음날 보면 2/3 정도는 발에 물집이 잡혀있다. 나는 걸으면서 많이 조심했기 때문에 물집이 생기지 않았다.
* 이제부터는 퇴소식 연습에 들어간다. 꼭 국기에 대한 경례할 때 “이기자!” 하고 경례구호 붙이는 애들이 있다. 계속해서 얼차려 받다보면 고쳐진다. 퇴소식 연습도 만만치 않게 힘들지만 그래도 마음은 이미 집에 가있다. 이때는 집에 간다는 마음에 복창소리도 더 커진다.
* 이때쯤이면 휴지가 정말 부족하다. 쵸코파이보다 휴지가 더 귀해지게 된다. 휴지가 없어서 똥을 못 쌀 지경이다.
* 퇴소식을 하고 마중 나온 부모님과 집으로 왔다. 미리 쵸코파이와 우유를 사오라고 연락한 터에 차 안에서 쵸코파이와 우유를 마시면서 갈 수 있었다. 안에서 그렇게 먹고 싶었지만 2~3 개 먹으니 질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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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주차 : 군대예절 및 제식훈련
* 2주차 : 각개전투 및 주간행군, 화생방(★★)
* 3주차 : 사격
* 3주차의 잠꼬대 : “8사로 이상 무!!!”
* 4주차 : 유격훈련(★★★★☆) 및 야간행군(★★★★★)
* 4주차의 잠꼬대 : “행군은 이미 했단 말입니다!!!”
* 가장 끔찍했던 음식 : 쌀국수(제2의 화생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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