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년 스카 봄소풍, 저 장소는!!

2013년 11월 2일 at 12:27 pm

2002년 4월 13일, 스카는 소풍을 갔다. 여의도라는 낯선 땅으로. 그때 난 알지 못했다. 사진 속 저 아파트에 살게 될 10년 후 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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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몰랐네

2013년 11월 2일 at 10:16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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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 여의도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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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4월 13일 토요일. 대학로에서 머나먼 여의도로 소풍을 갔지.

그땐 알지 못했어. 10년 후 내가 사진 속 저 아파트에 살고 있으리란 것을..

공중부양의 경험

2009년 1월 7일 at 11:53 pm

When I was a little kid, four years old, there was a dangerous inc……… (중략)

하늘을 난다는 것을 어떠한 기구에도 의지하지 않고 공중에 가만히 떠서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것이라고 정의한 후에, 나에게 그 기분이 어떠하냐고 물어보면 나는 “말할 수 없이 짜릿하다”라고 하겠다.

당시는 선사시대였다. 나는 결코 글을 읽지 않았으며 누구도 나에게 글을 전해주지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것에 손을 댄 순간 나는 온몸이 짜릿해짐을 느끼며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내 몸을 휘감은 강력한 전기는 내게서 고통 따위의 감정조차 앗아간 채 나를 공중에 머물게 하였다.

알 수 없는 짜릿함 속에 공중부양을 하고 있는 동안은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무척 길게 느껴졌지만 훗날 익히게 된 시간 감각에 의하면 약 10초 정도라고 하겠다.

그 시간동안 팔다리를 전기 먹은 개구리마냥 쭉 뻗고 온몸으로 기적을 만들어내던 난, 순간 중력이 나를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듯이 끌어당기는 것을 느끼며 깊은 물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깊은 물 속으로 빨려들어간 나에게 시간은 그간 부과하지 않았던 시간의 흐름을 한꺼번에 부과하며 나를 땅 위로 올려보냈다.

사람들은 나에게 거기서 헤엄쳐서 나온 것인지 혹은 우연히 나무나 돌 따위에 몸을 싣고 나오게 된 것인지 물었지만, 나는 빠지는 순간과 나오는 순간의 기억이 틈이 필름 속에서 찰라에마저 미치지 못했기에 그저 물이 나를 거부했다고 하겠다.

 

– 주광석 전기, 미사리 시절 中

아하. SCAA 활동 열심히 했구나.

2003년 7월 15일 at 1:02 am

1998년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1999년 가을까지 했던 스카 활동.

그리고는 이젠 다 됐다며 떠나고, 2000년에 다시 하게 된 스카는 재건된 스카였다.

그로부터 1년간 난 사실 같이 놀러만 다녔고, 같이 활동한 게 없었다.

그래서 난 내가 스카에서 활동한 게 별로 없다..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드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다가 많은 파일들을 보게 되었다.

학교에 있을 때면 늘 스카방이 빌까 걱정하여 스카방에 있으면서 많은 일들을 처리했던 나.

그 중 집에서 했던 일들을 발견하게 된 것인데..

정말 많았다.정말 다양하고 많았다. 집에서 했던 이 작업들만으로도 많았다.

나 자신도 내가 이 많은 것들을 했었던가 하고 놀라고 말았다.

이제 더이상 부족하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겠다. 괜한 자책감 같은 건 느끼지 말아야겠다.

그래. 난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다.. 정말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을만큼 열심히 했다..

그 1년간이지만, 나는 남들이 4년간 한 것보다 더 많이 해버렸던 것이다.

미양이 실종사건.. 전단지

2002년 11월 24일 at 4:41 pm

이거 붙이는데 돈 받아먹은 관리사무소 ㅡ.ㅡ

미양이 실종사건.. 전단지

UFO 목격담

2002년 7월 15일 at 12:32 am

1998년 2학기, 나는 교육과 인터넷 레포트로 UFO 관련 사이트들에 대한 조사를 했다.

첨부된 gif애니는 당시에 만든 첫 애니gif으로서, 레포트의 상단에 들어갔다.

태풍 속에서 산에 길을 내며 벌초를 하던 1998년 가을.

당시 난 주말을 이용해서 시골에 가서 벌초를 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내가 운전하지 않아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밀양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어느 도로 위에서였다.

무심코 올려다본 동쪽 하늘에 UFO 가 보였다.

UFO를 조사하며 보았던 것들과 똑같이 생긴 그 UFO는 하늘을 유유히 날아 서쪽 하늘로 사라졌다.

나는 뭐라 말도 못하고 멍해져서 그 UFO 의 궤적만을 쫓고 있었다.

UFO가 사라진 후에야 나는 운전하던 사촌형에게 UFO를 보았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얌마.. 세상에 그런 기 어딘노~” 라는 핀잔밖에 들을 수 없었다.

그 후 몇 번 사람들에게 UFO 목격담을 얘기했지만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나조차도 UFO의 존재를 별로 믿지는 않는다.

믿지는 않은데 보았던 것을 어쩌랴. 보았음에도 믿지 않는 것을 어쩌랴.

아무튼 나는 UFO를 보았다.

UFO 목격담

잃어버린 날들에 대한 회상.. 미영이 생일날..

2002년 6월 3일 at 12:57 am

(※ 사진:1998년 8월 어느 날의 스티커 사진. 왼쪽부터 은영, 호영, 미영, 광석)
가끔 아침에 일어나면 뭔가 어렴풋이 기억나는 게 있다. 흑백영화는 아닌데 흐릿한 것이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 기억에 촛점을 맞추다 보면 하나 하나 선명해지면서 한 편의 고요한 영화가 완성된다. 오늘 아침부터 머릿속을 가득 메운 그 기억의 시절은 순진으로 도배된 나의 대학교 1 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1998년 여름, 자전거 여행도 끝나고 빵점학교도 끝난 그리 덥지는 않은 어느 여름날 과천이었다. 6 살 때 암사동에서 스케이트를 신은 채 외삼촌 등 꼭 잡고 얼음판 위에서 미끄러지던 그 기억 이후로 처음으로 그 날 난 스케이트를 탔다. 미영이의 초대를 받아 간 과천 구민회관 아이스링크장. 인원은 미영이와 은영, 나, 호영, 현우, 민아 등이 있었던 것 같은데 더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이 중 미영이의 절친한 친구인 은영을 제외하고는 자전거 여행을 함께 갔던 멤버이기도 하다. 스케이트를 사실상 처음 타본 나와 호영은 얼음판 위에서 상당히 고전해야 했다. 도무지 믿을 수 없게도 우리는 얼음판에 당당히 나설 수 없었던 것이다. 자꾸만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지고 자빠지고 발목이 꺾이고.. 타기 전의 자신감은 어디로 갔는지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래저래 자세를 바꿔가며 시도해봤지만 계속해서 마찬가지였다. 다른 아이들은 잘 탔는데 난 타지도 못하는 실력에 그들을 쫓느라 무척 애썼던 기억이다. 막 달려서 누군가를 밀곤 하기도 하였고, 나를 밀어 넘어뜨리려는 상대로부터 한참을 도망가기도 하였다. 그 중 기억나는 장면 하나는 미영이에게 밀려 넘어진 나, 그에 대한 복수로 미영이를 밀치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던 나, 그리고 여유롭게 슬슬 도망가던 미영, 드디어 미영이를 밀치는 나와 가소롭다는 듯이 빠져나간 미영, 그리고 넘어지는 나. 그것을 보며 으하하하 즐거워 웃던 미영. 그렇게 웃다가 웃다가 주체하지 못하고 넘어지던 미영. 그 사건으로 미영이 무릎엔 한동안 깨진 상처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호영이도 결국 포기하고 나만이 끝까지 정복하겠다고 링크 위를 열심히 달렸지만 결국 정복하지 못하고 친구들에게 이끌려 과천 공원으로 갔다. 사실 난 그날이 미영이 생일인지 모르고 있었다. 누군가 사온 (미영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케잌으로 생일 축하를 하고 맥주를 약간 마시고는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다. 사실 그 날 하도 피곤해서 과천에서 쌍문동까지의 그 기나긴 길을 어떻게 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후 몇 번 더 가 본 바로는 상당히 고달펐던 기억이 있다. 공원이라는 퍼블릭한 공간에서 중앙의 정자 하나를 점령한 채 맥주라는 술을 마시던 기억은 믿을 수 없이 순진했던 나에겐 상당한 문화적 충격이었다(당시 나는 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없는 나이이기도 했다). 나의 첫 방학은 그렇게 끝나갔고, 그 방학동안 나는 수많은 혼란과 혼돈에 빠져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인생관의 상당한 변화를 겪기도 했고, 크고작은 변화들을 내 마음 속 깊이 간직한 채 지금까지 살아왔다.

잃어버린 날들에 대한 회상.. 미영이 생일날..

그래.. 바둑도 공부했지..

2002년 5월 4일 at 1:43 pm

지금 다시 하면 얼마나 할까?

점점 더 앞을 내다보게 되는 그 재미에 빠져들었었는데.

그래.. 바둑도 공부했지..

장수클럽 소개 – 1999년 1월

2002년 5월 4일 at 12:50 pm

   장수 클럽이란 ?

     저희는 축구를 좋아하는 선덕 고등학교 13 기 학생들로 이루어진 축구
    클럽입니다. 원래 선덕 고등학교는 학생들이 써클을 만드는 것을 절대
    금지하지만 저희는 지하 써클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저희
    써클이 시작된 것은 95 년도 1 학년 12 반 학생들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저희 클럽은 이후 2 학년 4 반으로 중심을 옮겼다가 3 학년때는 전교에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고 3 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말만 되면 학교 운동장에 모여 땀을 뻘뻘 흘리면서 축구를 계속했습
    니다. 수능 시험이 다가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죠. 그렇게 고 3
    도 지나가고.. 저희 클럽 회원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절반
    정도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고 절반 정도는 재수를 하게 되었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도 우리는 시간만 나면 모여서 축구를 했습니다.
    하지만 재수생들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저희는 당분간 축구를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한 해가 흘러가고.. 드디어 수능이
    끝나 이제 우리는 다시 축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바빠져
    예전처럼 자주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종종 만나 축구를 하며 대학에
    합격한 학생이 있으면 만나서 술도 마시고.. 밤새 스타크래프트도
    즐기면서 우리는 장수 클럽으로서의 만남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습니다. 벌써 군대 간 친구도 있고.. 학교 생활에 바쁜 친구들도
    많습니다. 저희들이 언제까지 클럽을 이끌어 갈 수 있을까요 ? 그것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축구를 중심으로 장수
    클럽을 이끌어 나갈 것입니다. 우리의 만남이 영원하길 희망합니다.

 

   장수 클럽이라는 이름의 유래

     장수 클럽이 태어나던 95 년 초창기 멤버 중에는 ‘늙은이’, ‘할아버지’,
    ‘노새’ 등의 고령함을 뜻하는 별명을 가진 회원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신동현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에서 팀
    이름을 장수 클럽이라 정했습니다. 신동현이여, 장수하라!

 

   장수 클럽의 구장

     First – 처음에 우리의 구장은 선덕 고등학교 운동장 한쪽
    구석이었습니다. 선덕 고등학교는 산으로 둘러싸인 학교였고 한쪽
    구석에는 흙으로 된 절벽이 가까이 가지 못하게 막아놓은 철심으로
    둘러쳐져 있었습니다. 한 면은 동쪽, 한 면은 남쪽에 있는 그 철심을
    골대 삼아 우리는 세모난 구장에서 축구를 했습니다.

     Second – 우리가 졸업할 무렵 그곳에 공사가 있었고 스탠드가
    마련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선덕 중학교로 이사 갔습니다.
    선덕 중학교 운동장과 신경 여상 사이에 있는 남쪽 강단과 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 서쪽을 골대 삼아 우리는 또다시 세모난
    구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습니다.

장수클럽 경기 기록

2002년 5월 4일 at 12:38 pm
1999 년 1 월 28 일 축구 결과(전반 20분, 후반 20분)
출석 : 김대홍, 김재명, 송창용, 신동현, 정현주, 주군

결석 : 김인용, 김성태(군복무중), 한종석, 박종석

청팀 홍팀
멤버 신동현

정현주

주군

김재명

송창용

김대홍

전 3분

전 10분

주군 득점

주군 득점

후 7분

후 8분

후 12분

후 13분

후 14분

후 19분

정현주 득점

정현주 득점

주군 득점

김대홍 득점

송창용 자책골, 김재명 GK 실책

송창용 득점

경기결과 6 – 3
개인기록 주군(3-0), 정현주(2-0) 김대홍(1-0), 송창용(1-0)
1999 년 1 월 24 일 축구 결과(전반 20분, 후반 20분)
출석 : 김대홍, 김재명, 김치원, 박종석, 송창용, 신동현, 정현주, 주군

결석 : 김인용, 김성태(군복무중)

무단결석 : 한종석

청팀 홍팀
멤버 김대홍(전반 DF, 후반 DF)

신동현(전반 FW,후반 GK, DF)

정현주(전반 GK, 후반 MF, GK)

주군(전반 MF, 후반 FW)

김재명(전반 DF, 후반 DF)

김치원(전반 FW, 후반 FW)

송창용(전반 MF, 후반 MF)

박종석(전반 GK, 후반 GK)

전 3분

전 10분

전 15분

김대홍 득점

군주군 득점, 신동현 어시스트

주군 득점

후 7분

후 8분

후 12분

후 14분

후 20분

정현주 득점

신동현 GK 실책

정현주 득점

신동현 GK 실책

송창용 득점

김재명 득점

김치원 득점

경기결과 6 – 3
개인기록 정현주(2-0), 주군(2-0),

김대홍(1-0), 신동현(0-1)

김재명(1-0), 김치원(1-0),

송창용(1-0)

추억거리를 찾는김에 하나 더 찾아봤다.

이때는 내가 좀 잘했지.. ㅋㅋㅋ

그립다. 친구들아~~ 제대하거든 같이 축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