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를 정말 뿌렸다?

2000년 6월 24일 at 1:20 am

나는 중도적인 자이다.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용을 지키려 노력한다.

보수도 좌익도 아니다. 힘의 균형을 안다.

취한 나는 약간의 흥분감을 안고 있다.

내가 아끼는 동아리, 그 중심에서 나와 함께 하는 후배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학생회의 이야기이건 학교의 이야기이건 일방적으로 믿지 않는다.

객관성을 띠지 않는 한 어느 쪽도 믿을 수 없는 것이 나의 성격이고 중도적인 것이리라 믿는다.

자신도 대학본부에 들어오려는 교직원들에게 신나를 뿌렸다는 이야기,

지금까지 듣던, 결사의 의지로 자신의 몸에 신나를 뿌렸더라는 이야기,

그리고 누구누구가 교수에게 신나를 뿌렸더라는 이야기와는 아주 달랐다.

나는 그 후배에게 신나를 뿌린다는 의미를 설명하려 노력했다.

그것은 ‘나는 너를 죽이겠다’ 라는 의지라는 것을.

그 후배가 ‘신나 대신 물’ 이란 걸 얘기했을 때 안도할 뻔했지만

‘신나가 모자라 물을 섞었다’라고 말할 땐 다시금 실망이었다.

상식의 풍부를 자부하는 나는 사람에게 칼을 들이댔다가 실패한 것은 살인미수죄이지만

칼을 가장한 나무토막을 들이댄 것은 법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 두 가지, 신나와 신나를 가장한 물뿌림 행위의 차이점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군대 보낼 위기에서도 학생회를 지지했던 나의 경험과 함께 얘기를 했음에도

어차피 그런 얘기가 통할 확률은 희박한 것이다.

여하튼 그 후배의 말로서 알게 된 사실들은 나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했으며,

진정 중도적인 자의 길을 걸으려 하는 나에게 진정 중용의 길을

좀 더 가깝게 해줬다. 중용도 결국 정보가 부재 속에서는 힘든 것이니까.

여전히 그들 중 하나의 의견에 동화하기는 힘들겠지만,

나는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중용을 잃지 않은 객관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사실에

스스로 그들보다의 객관적이라고 안도감을 느끼며 나의 신념을 지켜나갈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의 공표와 그것이 가져올 반향에 내가 중용을 지키고 있는 것일 수도,

그렇지 않고 나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일 수도 있음에 갈등하는 나….

나는 나의 신념을 위해 좀 더 잘 알기를 희망한다.

좀 더 가치개입적인 중용과 좀 더 자연적이고 과학적인 중도를 고민하는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