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있으면 개발자를 구할 수 있다? – 월간 마소 00.02

2000년 2월 18일 at 10:53 pm

이 글은 정보시대 월간 마이크로소프트웨어 2000년 2월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돈만 있으면 개발자를 구할 수 있다?

너무도 잘 나간다. 마치 IT 산업이 앞으로 모든 산업을 먹여 살릴 듯한 느낌이다. 하룻밤 자고 나면 몇몇 벤처 회사가 탄생하고, 졸지에 갑부가 된 30대 벤처 기업가가 언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모두가 부러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또 다른 횡재수가 없는지 두리번거린다. 언제부터 우리네 IT 산업 분위기가 이렇게 바뀌었던가?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는다. 전통적인 근면 성실은 이제 더 이상 이 시대를 이끄는 가치가 아닌 듯 싶다.

분위기가 이래서인지 요즘 IT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이직이 심하다. 좀더 벤처다운(?) 업체를 찾아 여기저기 떠도는 사람들로 어수선한 분위기다. 특히 기술 개발 분야의 인력난은 심각한 지경이다. 기회는 널려 있고 아이디어 또한 콸콸 샘솟는데, 실제로 이를 구현할 인력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업체가 한둘이 아니다. 심지어 마소 편집팀으로 무턱대고 좋은 개발자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이 하루에도 몇십 건식 들어온다. 솔직히 이 기회에 ‘마소에서 개발자 인력 공급 업체나 하나 차려?’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가 어째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일까?

‘컴퓨터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으려면 프로그래밍을 배워라’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봄직한 조언이다. ‘컴퓨터 전문가 = 프로그래머’는 이 분야에서 통용되는 공식이다. 사실 컴퓨터를 배운다고 한다면 컴퓨터에 대한 기본 활용 기법을 익히고 몇몇 애플리케이션의 사용법을 배운 뒤 프로그래밍으로 접어드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상당수가 프로그래밍에 대한 벽을 넘지 못하고 탈락하고 만다. 이처럼 프로그래밍은 소수 전문가만의 특별한 재능이며, 일종의 특권층을 형성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프로그래밍에 대한 인기가 많이 식었다. 한 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라는 평이다. 투여하는 노력에 비해 돈벌이가 시원찮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여기다 직접 개발한 제품으로 사업을 벌여 성공을 거뒀던 전통적인 기업 운영 방식에 변화가 생긴 것도 한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즉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일단 투자를 받고 이를 구현할 프로그래머는 추후에 고용해 개발하면 되지 않겠냐는 인식이 생겨난 것이다.

물론 너무나 변화무쌍한 세상에 살고 있기에 처음부터 모든 걸 직접 한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개발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경우라면 최소한 아이디어 단계에서라도 개발자의 조언을 구해야 한다. 과연 구현이 가능한 아이디어인지, 구현에 걸리는 시간은 어느 정도인지, 최적화된 다른 방법은 없는지 등등. 개발과 관련해서는 관련 전문가에게 컨설팅을 받고 사업계획서를 작성해야 무리 없이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개발자 급구를 외치는 업체 중 상당수가 현재의 벤처 분위기에 휩싸여 실제 구현 가능성은 확인해 보지 않고 낙관적으로 사업 계획서를 작성한 뒤, 이를 제대로 시행하지 못해 안절부절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실력있는 개발자라면 얼마를 요구하든 상관없다면서 애타게 찾고 있는 업체가 한둘이 아니다. 주식 가치로 따지면 연일 상한가를 기록한다고나 할까?

‘돈만 있으면 개발자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프로그래밍을 천직으로 알고, 실력을 갈고 닦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건 그런 열성파 개발자는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어느 정도 개발자로서 자리를 잡으면 그 후로는 사업을 하려는 경향이 있어 도사급 개발자로 등극하는 경우는 손꼽을 정도다. 과연 실력 있는 개발자가 뒷받침하지 않아도 벤처 산업이 향후 국내 산업의 지주로 성장할 수 있을까? 돈이면 다 된다는 인식이 팽배한 지금, 현재의 벤처 분위기가 한낱 일장춘몽으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홍동선 dshong@infoag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