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십년을 좌우합니다.
순간의 선택이 십년을 좌우합니다. 금성이 광고를 하면서 사용했던 이 광고 문안은 어느 유행어보다 힘이 있어 단시일내에 사라져 버리는 유행어와 달리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며 이 분야, 저 분야에서 아주 쓸모있는 격언(?)처럼 사용되고 있다. 한번 선택해 주기만 하면 십년은 확실히 보장해 준다는 뜻이다. 광고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보장하는 약속이다. 물론, 광고에는 과장이 섞이기 마련이지만 그런 건 정도가 있다. 한번 광고에 속은 사람들은 결코 그 업체의 말을 다시 신뢰하지 않는다. 때문에 광고는 사실을 근거로 소비자에게 하는 약속이어야 한다. 좋은 광고는 좋은 제품에서 나온다는 광고쟁이들의 금언처럼, 금성사의 이런 자신감은 자사 제품에 대한 자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자신있는 ‘선언’의 뒤에 자리하고 좋은 제품은 어떻게 생산되는 것인가.
오늘과 내일을 함께 준비하기 위한 포석, 연구소를 튼실하게
금성사는 1975년 설립하여 운영하던 중앙 연구소로부터 87년 정보기기 관련분야를 독립, 현재의 정보기술연구소가 자리한 문래동의 강서빌딩으로 이전시켰다. 그 후 91년까지 컴퓨터/사무기기 연구소로 운영하다가 지금의 정보기술연구소와 정보시스템연구소로 분리, 시스템연구소는 평택으로 옮겼다. 정보기기 관련 연구소는 이렇게 국내에 두 곳, 88년 동경에 설립된 동경 개발실이 있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이번 새롭게 이루어진 금성사 연구소 개편의 특징은 ‘오늘’과 ‘내일’을 체계적으로 동시에 준비해 나가자는 점에 있다. 꿈만 먹고 살 수도, 하루살이처럼 근시안적으로 살 수도 없는 것이 현재 기업들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을 먹여 살릴 정보시스템연구소와 내일을 준비해 줄 정보기술연구소가 탄생한 것이다.
정보시스템 연구소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다 서울을 막 벗어나면 얼마 가지 않아 경기도 오산이 보인다. 이 오산에 자리잡은 정보시스템연구소는 행정구역상의 주소는 평택이다. 평택공장에는 정보시스템 연구소 외에도 금성사의 가전이나 다른 분야의 연구소도 함께 들어있다. 공장과 연구소를 연결해 더욱 빠르고 의견 교환이 쉬운 제품 개발을 위해 구축한 체제이다. 총 360여명의 연구원중 박사 25명, 석사 250명, 학사 85명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평택연구소는 현재 1년 총 매출액의 약 8%를 연구비로 지출한다고 관계자는 밝힌다. 정보시스템연구소는 PC연구실, 시스템연구실, 금융기기연구실, 주변기기 연구실, 팩스연구실, 연구지원실의 6개 부문으로 나누어 각 분야의 연구를 진행중이다. PC연구실은 최근에 486SX급 컬러노트북을 개발하는 등 점차 소형화 경량되어가고 있는 하드웨어 추세에 맞추어 시장에서 팔릴만한 제품들을 개발한다. 여기서 개발한 286, 386 노트북은 현재 제니스로 OEM 수출되며, 데스크톱은 인텔로 수출하고 있다고 한다. 시스템연구실은 주로 중형 이상의 컴퓨터 개발에 주력한다. 국책 과제인 타이컴 개발에도 참여하였고 이전에는 워크스테이션 개발도 했었다. 금융기기 연구실은 현금 자동지급기나 금융단말기와 같은 은행관련 시스템을 개발한다. 주변기기 연구실은 도트부터 레이저까지 각종 프린터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도트매트릭스 프린터로 프린터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던 금성사는 89년에는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번째로 레이저 빔 프린터를 개발하였고, 92년부터는 기능을 개선한 2차모델 GLP-1150 개발에 성공하였다. 팩스연구실은 1980년 금성전기에서 시작하여 87년 금성사로 업무가 이관된 팩시밀리 사업을 지원하는 연구실이다. 팩스연구실은 앞으로 레이저 짐 프린터 엔진을 이용한 보통용지 팩실밀리와 우리 시장 특성에 맞춘 한국형 인공지능 팩시밀리를 개발중이다. 연구지원실에서는 위의 5개 연구실에서 필요한 제반업무들을 지원하는데, 캐드시스템으로 각 연구실에서 필요로 하는 도면 설계라든가 외국의 표준이나 규격 획득을 위한 측면 지원 작업들을 수행한다.
* 제품 기획부터 고객의 손에 이르기까지
정보시스템연구소는 제품 개발의 기획 단계부터 고객이 제품을 구입하여 반응을 보이는 단계까지 연결시켜 이들간에 피드백 작용이 이뤄지도록 해 놓고 있다. 신제품 아이디어는 누구나 내놓을 수 있다. 회의를 통하기도 하고 공모제도나 고객의 의견 조사를 통해 대강 제품의 윤곽을 그린다. 그런 다음, 본격적인 기획안을 작성하고, 다음에는 제품 개발에 따르는 세부 사항들을 철저하게 조사한다. 시장동향이나 앞으로의 가능성들을 분석한 후 결정이 되면 제품이 되기 전 시제품 단계인 프로토 타입을 만든다. 일단 ‘성능’을 제일 우선으로 하고 갖가지 시험단계를 거친다. 다음에는 샘플을 만들어 성능과 기능을 점검한다. 이 때 만들어지는 제품은 거의 반 완제품이다. 그런 다음 전수받은 기술을 살펴보고 더욱 많은 연구인력을 투입해 완제품을 만들어 낸다. 이 과정까지는 연구소와 공장이 공동으로 작업을 해 나간다. 그리고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출하하고 유통 경로를 통해 고객의 손에 닿게 된다. 이렇게 판매된 제품에 대한 고객의 반응을 다시 조사해서 새로운 제품 개발에 참고하게 된다. 소비자와 제일 가깝게 피드백이 이루어지는 정보시스템연구소는 이렇게 새롭게 개선할 부분들, 소비자의 새로운 요구Needs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어야 하는 연구소이다.
정보기술연구소
“기초 응용 기술을 준비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품이 모양을 제대로 갖추어서 양산되기 전의 기초 기술을 개발하는 곳이지요.”라고 정보기술연구소 기획실 김유덕 실장은 정보기술연구소의 역할을 정의한다. 현재 평택과 분리되어 식구들을 대부분 내려보내고 현재는 7~80여명의 연구원이 문래동 강서빌딩에서 4실로 나뉘어져 연구를 하고 있다. 1실은 주로 국책연구소와 공동으로 일을 한다. 유닉스같은 운영체제로 운영되는 중대형 시스템 개발에 주력하는데, 중앙처리장치 중심에서 벗어나 각 부분별로 통제되는 분산 처리 방식이 증가에 맞춰 이에 대처할 기술을 연구하는 것이 이들의 몫이다. 멀티미디어 워크스테이션 개발과 이에 맞는 소프트웨어도 연구중이다. 2실은 주로 통신과 관련한 기술을 연구한다. 차세대 팩스나 국제 표준화기구ISO가 작성한 컴퓨터통신 프로토콜에 관한 국제표준 규격인 OSIOpen Systems Interconnection의 7레이어를 구현하는 ISDN용 단말기를 개발한다. 3실은 개인용 단말기에서 돌아가는 멀티미디어 개발용 툴과 같은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한다. 홈 PC도 3실의 작품이었다. 이들은 현재 단독으로 운영되는 컴퓨터 시스템들이 점차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상황에 맞춰 이 단말기들을 지원할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4실은 3실에서 개발하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방이다. 더 작고 더 가벼운 컴퓨터, 랩톱이나 노트북, 팜톱과 같은 컴퓨터 개발에 주력한다. 이들은 또한 가전과 통합되는 새로운 개념의 전자기기 연구도 진행중이다.
금성의 PC 개발 십년, 8비트 FC-100부터 486SX 컬러노트북까지
1958년 금성사가 설립된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금성사와 함께 떠올릴 수 있는 제품들은 많다. 금성사가 컴퓨터와 처음 연을 맺은 건 1977년 마이크로컴퓨터 개발하면서부터이다. 그 이후 PC와 관련된 부분을 중심으로 발전상황을 더듬어 보기로 하자. 처음 금성사에서 PC가 나온 건 1982년 5월이다. 중앙연구소 제 1그룹과 공장 설계실팀은 패미콤 모델 ‘FC-100’을 개발하고 83년 2월부터 양산을 시작해 주로 학교에서 교육용으로 활용되던 제품이다. 그 다음줄에는 1984년 3월 국내 최초로 개발한 IBM PC와 호환 16비트 컴퓨터가 서 있다. 이때부터 ‘마이티’시리즈가 시작된다.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봄에 열린 컴덱스 쇼에 출품되어 ‘Goldstar’라는 자체 상표를 달고 전시되면서 국내 PC 업체가 세계에 알려진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그들의 자체 평가이다. 그리고는 업무용 컴퓨터인 ‘마이티주니어’를 85년에 개발되었다. 전송거리 300미터 이내의 중소형 건물에서는 한대의 주 컴퓨터에 최고 254대의 주변 컴퓨터를 연결하여 각종 자료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근거리 통신망을 갖춘 제품이었다. 86년에는 ‘마이티-AT’와 ‘마이트-16 II’가 선보인다. 640KB의 주기억용량을 가진 마이티-16 II는 20메가 하드디스크를 채용한 XT컴퓨터였다. 그 후 1년만인 87년 8월에는 32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32비트 컴퓨터를 개발하였다. 8비트에서 16비트로 넘어 가는데 4년, 16에서 32비트로 뛰어넘는데는 불과 1년이다. 날이 갈수록 급속하게 변모하는 컴퓨터 업계의 빠른 발전속도를 읽을 수 있다. 당시는 일반 사용자들이 없어 캐드나 전문 엔지니어들이 주로 이용하던 32비트 PC가 이젠 아주 보편화된 것을 봐도 역시 국내 PC계는 괄목상대 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냈다. 금성사는 88년 80286 인텔 칩을 내장하고 EGA보드를 지원하는 랩톱을 개발하여 책상 붙박이던 컴퓨터의 이용 장소를 바꾸었다. 88년에는 랩톱과 함께 386PC인 386T를, 91년에는 286, 386 노트북을, 92년 2월에는 단순히 CPU카드만 교환이 가능한 모듈라 PC 개발에도 성공하였다. 그리고 92년 11월에 486SX 컬러노트북을 개발한 것이다. PC의 국산화가 과연 얼마나 이루어졌는가, 과연 하드웨어 조립이 얼마나 우리 산업 발전에 도움을 주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도 다르고 평가도 분분하다. 허나 초창기부터 국내 PC 업계를 주도해 온 금성사의 입장은 이렇다. “우리 나라가 제일 처음 자본을 마련할 수 있었던 건 PC의 하드웨어 조립을 통해서였습니다. 자본도 부품도 자원도 없는 국내 컴퓨터 업계가 이정도 성장하고 있는 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 조립 기술로 돈을 벌게 된 덕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이렇게 축적한 기술과 벌어들인 자본으로 한단계 도약하는 발전을 이루어야 할 때라는 것”이 금성사 정보기술연구소의 김유덕 기획실 실장의 견해이다. 지금까지 쌓은 자본과 기술력을 토대로 더욱 나은 내일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결코 일면의 진실만을 가지고 단선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국내 컴퓨터 산업 평가, 성마름은 금물
국내 컴퓨터 업계에 대해서는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서로 문제를 지적하고 모두 전문가인듯이 해결책을 내놓는다. 그러나, 이젠 차분한 돌아봄과 성찰이 필요한 때라는 것이 지금 우리가 이 정도까지 성공하는데 일익을 담당해 온 사람들의 목소리이다. 금성사 정보기술연구소 3실을 총괄 책임맡고 있는 박영만 실장은 이렇게 말한다. “국내 상황이 외국과 비교할 때 나쁜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떨어지는 부분은 제 시간에 제 물건을 내는 적기출하가 어렵다는 점, 텔레비전이나 비디오는 70~80 % 정도의 부품이 국산인데, 컴퓨터는 그 반대인 부품 현실도 그렇죠. 또 제품을 내놓아도 실제로 거의 수용이 불가능한 적은 규모의 시장 문제도 그렇고. 이건 이렇다, 거건 저렇다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는 복합적으로 문제가 걸린 상황이지요. 그러나, 모든 걸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좀 기다릴 줄 알아야지요. 어느 분야든지 누적된 정보가 있어야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우린 이제 차분하게 우리 환경에 맞는 제품 개발로 관심을 기울일 때입니다.” 달변의 박영만 실장은 참고 기다림속에서 차근차근 쌓아가며 우리가 당면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같은 방에서 멀티미디어를 연구하고 있는 안종길 박사는 또 다른 면을 지적한다. 컴퓨터 전문 잡지나 언론쪽에 다음과 같은 주문을 한다. “이젠, 언론도 신중하게 알고 보도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은 너무 ‘국내 최초’, ‘세계 최초’가 남발됩니다. 대체 어떤 점에서 최초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도하지도 않으면서요. 그저 주어진대로 보도하는 차원에서 탈피해야 할 때가 되었지요. 사안의 가치를 볼 줄 아는 침착함과 전문 지식을 가지고 보도해야지요. 가치를 평가하고 그것을 제대로 전달해 주는 역할이 언론의 몫입니다.” 금성 연구소의 핵심인 이들은 성마름은 금물임을 말한다. 모두 제 역할을 맡아주어야 국내 산업의 발전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기술은 무언가 실용적인 결과를 얻는 과정
금성사의 강인구 부사장은 한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기술이란 과학이나 공학지식을 활용해서 무엇인가를 만드는 등 실용적인 결과를 얻는 과정이라고 ‘제 3세대 R&D’라는 책을 인용하여 이야기했다. 그는 계속해서 개발 주체는 기업이며 학교나 연구소는 지원을 해야 하는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성사 연구소는 제품 개발의 주체로 과학이나 지식을 활용해 실용적인 결과를 얻기 위한 연구를 지금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연구소 운영 체제를 바꾸었다. 새로 시작하는 이들이 ‘순간의 선택으로 십년을 자신할 수 있는’ 더욱 좋은 연구소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얼마나 더 사용자와 친숙한 제품을 선보일 것인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사용자로서 제대로 된 반응을 전달하는 것이 우리가 맡을 몫이다.
금성사는 최근 국내에서 처음으로 486SX급 컬러노트북 PC를 개발, 작년 11월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도킹스테이션까지 장착하여 테스크톱 PC의 확장성을 동시에 구현한 이번 컬러노트북은 2.7Kg의 무게에 크기는 대학노트 정도이다. 충전만으로 외부 전원없이 1.5시간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다. 이번 컬러노트북은 TFTThin Film Transistor 컬러 LCD를 채용하였고 256색을 지원한다. LCD 모니터는 TFT와 STNSuper Twisted Nnmatic 기법((마이컴 92년 7월호 259페이지 참조) 등 여러가지 방식이 있지만, 앞으로 가격 대 성능비를 고려하면 컬러 지원이 되면서도 비용은 싼 STN 방식이 더 인기를 끌 것이라고 개발팀에 참여한 박상우 연구원은 전망한다. TFT가 성능이 더 우수함으로 알면서도 금성도 역시 가격 문제때문에 STN 방식의 채택을 고려중이다. 개발팀을 이끌었던 안용화 선임연구원은 “아직, 값이 너무 비싸다는 게 큰 흠입니다. 올해는 박상우 연구원을 중심으로 해서 노트북의 가격을 떨어뜨리는 일에 주력하게 될 것”이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힌다. 컬러노트의 가격은 380만원, 도킹스테이션이 50만원이다. 모두 부가세 별도로 말이다. 앞으로 이 개발팀은 가격 하락 외에 한창 새로운 카드 표준으로 주목받고 있는 PCMCIA와 같은 신기술 채용에도 바쁘게 눈을 돌리려고 한다. 현재 팀원중 한명은 미국에 출장중이다. “IBM이 표준처럼 자리잡은 데스크톱 분야와 달리, 노트북은 아직 확정된 표준이 없어 서로 신기술 개발과 개선으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더욱 어렵다”고 하는 안용화 선임의 지적대로 아직 이들의 길은 쉽지 않다. 게다가 LCD, HDD, FDD같은 주요부품은 모두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아마 올해도 세계 첨단기업들은 더욱 가볍고 빠른 노트북을 틀림없이 선보일 것이다. 거기에 처지지 않기 위해 금성사의 이 팀원들도 지금 껍질을 벗은 알몸 컴퓨터를 놓고 부품을 갈아보고 납땜하고 테스트하고 새로운 자료를 뒤적거리고 있을 것이다.
도킹스테이션 : 도킹스테이션이란 데스크톱과 노트북 PC의 장점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획기적인 장치이다. 사무실이나 가정 등에서 사용할 때는 데스크톱 PC처럼 사용하고 외부로 이동할 때는 노트북 PC만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된 다기능 확장상자이다.
차세대의 주목받는 기술 흐름은 누가 뭐래도 역시 멀티미디어이다.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사용하기 편하고 보기 좋고 듣기에도 좋은 것을 원한다. 멀티미디어는 끊임없이 감각적이고 새로운 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각광받는 첨단 매체로 주목받고 있다. 때문에 세계적인 대기업은 물론, 컴퓨터와 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치고 멀티미디어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기업이 없을 정도이다. 규모가 크건 작건간에. 이번에 금성사가 선보인 멀티미디어 보드, MM-1 역시 멀티미디어분야에서 금성의 영역을 개척하고자 하는 이들의 야심작이다. 텔레비전이나 비디오, 캠코더에서 오는 여러가지 비디오 신호(NTSC, PAL, SECAM, S-VHS)를 받아 VGA 모니터로 볼 수 있는 MM-1는 VGA 모니터에 나타나는 비디오 화면 크기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 입력받은 화상을 자유자재로 축소.확대, 편집이 가능한 이 보드는 원하는 화면과 소리를 선정하여 하드디스크에 실시간으로 녹화할 수 있으며 비디오 화면, 그래픽, 문자, 소리 등을 편집할 수 있다. 비디오 녹화, 편집, 애니메이션(만화) 저작, 화상우편, 화상전화, 멀티미디오 교육용 프로그램, 광고제작, 화상통신, 컬러 전자출판 등 갖가지 분야에서 이용되고 있다. 멀티미디어 보드 MM-1에 참여했던 임수일 선임연구원은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이 있습니다. 현재 입력받은 동화상의 움직임을 더욱 자연스럽게 처리하는 점, 확대했을 때도 해상도가 크게 떨어지지 않게 하는 점 등을 점차 고쳐야지요.”라고 자신들의 작품에 대해 진솔한 평가를 하는 그는 아직 국내에서는 중요한 부품은 하나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라고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