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첨단연구소 무한한 창의로 유한한 자원을 활용한다
잘 굽고 잘 밀고 잘 감자
잘 굽고 잘 밀고 잘 감자. 포항제철의 제2열연 공장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이 표어가 한 눈에 잡힌다. 굽고, 밀고, 감자. 철 제조 과정의 고갱이를 단 세 개의 동사로 쏙쏙 뽑아놓았다. 불덩어리를 삼킨듯 시뻘겋게 구워진 쇠덩어리가 선로를 타고 번개처럼 내달리면, 쇠는 어느새 선로 좌우에 설치된 물뿌리개에서 좍좍 쏟아지는 물로 급냉되고 얇게 밀어져 감겨진다. 순식간에 시뻘건 불덩어리가 차가운 쇳덩이로 바뀐 것이다. 바로 이 과정, 굽고 밀고 감기를 얼마나 ‘잘’ 해내느냐와 얼마나 좋은 철이 탄생될 것인가가 직결돼 있다. 그저 이렇게 세 단계를 ‘잘’ 해내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우랴 싶겠지만 철광석, 석회석, 유연탄을 섞어 다양한 형태의 철Iron과 강Steel을 생산해 내기까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자본과 인력, 설비, 기술력 등이 복합적으로 갖춰져있어야 한다. 아주 작은 바늘부터 지금 우리가 쓰는 컴퓨터 케이스, 거대한 비행기 생산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분야 닿지 않은 것이 없는 철강 산업은 그래서 국가의 기간 산업이라고 한다. 이미 선진국이 된 나라나 선진국으로 도약코자 하는 나라치고 철강산업에 주력하지 않는 나라를 찾기 어렵다. 현재 세계 철강산업은 일본의 신일본제철과 우리의 포항제철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주도해 나가고 있다. 국제 경쟁력 약화로 고생하고 있는 우리 나라에서 유별나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몇 안되는 분야, 바로 그 중심에 철강 산업이 서 있다. 그 버팀목은 포항제철이다. 포항제철은 더 나은 철iron과 강steel 생산과 21세기 준비를 위해 6년전인 1987년 산업과학기술연구소(RIST : Reserach Institute of Industrial Science and Technology)를 설립, 첨단 기술 연구 개발의 토대를 세웠다.
포항제철, 포항공대, RIST의 삼박자가 어우러져
내노라하는 각종 첨단연구 인력과 설비를 갖추고 21세기를 준비한다는 산업과학기술연구소는 갓 결혼한 여인네의 옷차림만큼이나 잘 꾸민 포철단지 중심부에 있다. 쇳물을 든 젊은이들의 동상 밑에서 터져나오는 분수를 기점으로 왼쪽에 연구소가 있고, 그 반대편으로는 포항공과대학이 있다. 연구소 뒤편에는 이 곳을 다녀간 노벨상 수상자들이 심고간 나무들이 있는 노벨동산이 울타리처럼 에둘러있다. 포항에 자리한 연구소 외에 광양 제2제철소의 광양연구소까지 합쳐 연구인원만 모두 5백여명이 넘는다. 이중 박사급만도 245명이다. 인재는 말할 것도 없고 최첨단 연구 설비 또한 자랑거리로 꼽는 산업과학기술연구소는 투과전자현미경(TEM실), CO2 레이저 용접기, 핵자기 공명 분광기, 진공유도 용해로 등 최첨단 설비로 무장하고 있다. 게다가 바로 인근에 최첨단 기술 개발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장비로 손꼽히는 초전도 입자가속기가 내년을 목표로 건설중에 있어 점차 나아지는 연구 환경으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올해로 창립 6주년을 맞이하는 산업과학기술연구소가 또 하나의 강력한 원군은 마주보고 있는 포항공과대학이다. 지하로는 연구소와 대학이 하나로 연결되어 통행이 가능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런 건물 설계는 학교에서 연구한 기초 원리를 산업기술연구소르를 거쳐 산업 현장에서 직접 활용할 수 실용 기술화하겠다는 발상의 표현처럼 보인다. “우리 연구소의 특징이라면 연구소 조직 자체가 현장인 포항제철의 철 생산 공정이 거의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생산라인이 제안한 의견을 통해 연구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연구소에서 개선된 기능들은 현장에서 실제 활용하고 있습니다.” 현장과 연구소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연구소의 최대 장점이라고 김용운 행정부장은 지적한다. 포항제철의 산.학.연은 3박자가 제대로 어우러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듯 하다.
철광석을 철로 감아내기까지 알알이 맺힌 연구의 성과들
포항제철을 바탕으로 한 산업과학기술연구소의 눈은 누가 뭐래도 어떻게 좋은 철을 만들어 낼 것인가이다. 연구부문은 철강부문, 이공부문, 신소재 부문, 경영경제부문 등으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우선, 철강부문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철강부문은 포항에 제선연구실, 제강연구실, 시스템연구부, 에너지연구부, 강재연구부, 특수강연구부, 용접연구센터를, 광양연구소에 표면처리연구부를 갖추고 있다. 철을 만드는 공정을 해석하고 그 속에서 문제점을 찾아 개선하며, 더욱 나은 새로운 철 만드는 기술은 없을까 고민하는 제선연구실은 인공지능을 도입해 철을 제련하는 것에 대해서도 연구가 진행중이다. 주로 특수강이나 고급강을 더욱 잘 다듬는데 있어 필요한 기술들을 연구하는 제강연구실은 특히나 이 기술을 먼저 개발해 선점하는 나라가 세계 철강시장을 석권할 것이라고 일컫어지는 스트립캐스팅 기술에 주력하고 있다. 컴퓨터와 관련이 가장 깊은 부서로 시스템 제어 기술, 정밀 측정 시스템 개발, 설비 진단 기술, 인공지능 시스템의 응용 기술, 공장자동화 기술 등을 맡는 시스템 연구부는 사람이 하고 있는 작업들의 기계화를 담당한다. 에너지 연구부는 석탄 에너지 전환과 열공정 연구를 비롯, 공해 산업으로 전락하기 쉬운 제철 산업으로 인해 환경 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한 연구로 폐자원 재생 기술 등 에너지 자원의 활용을 중점으로 한 대체 에너지 개발과 폐자원 재활용 분야에 파고들고 있다. 강재연구부는 신강종 개발, 재질예측 제어기술, TMCP강 개발, 압연공정 최적화 기술 등을 주로 연구한다. 전기강판과 스테인레스강 제조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신공정 기술 개발, 품질 향상을 위한 제조 기술 개발 그리고 강종 확대 및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 연구를 수행하는 특수강 연구부 등이 철강 부문을 구성하고 있다. 이공부문은 기초과학, 기계, 화공, 전자전기 등으로 나눠 기초 이론이나 혁신적인 이론 개발 등을 주로 한다. 제철 과정에 필요한 로보트를 개발한다거나 반도체용 특수 장비들을 개발하는 것도 이 부문의 몫이다. 금속재료, 무기재료, 유기재료, 자성재료 등으로 구분해 연구를 진행하는 신소재 부문은 더욱 강하고 고기능의 고부가가치형 새로운 소자 개발과 포항제철 제품의 특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경영경제부문은 날로 극심해져 가는 국제 경쟁시대에 포항제철이 어떤 방향을 잡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기업 대응 전략을 수립한다. 생산과 경영효율성을 높이고 포항제철 경영 합리화를 위한 다양한 모델 개발과 21세기 비전에 관한 연구 등을 수행했다. 기획, 행정 기술 지원부는 연구 진행을 위해 필요한 자료, 설비, 실험, 인증 등 갖가지 업무를 지원한다.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
여섯해동안 산업과학기술연구소가 추수한 곡식들은 포항제철이란 곳간에 ㅆ여 잘 활용되고 있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피치(원유나 콜타르를 증류하고 난 뒤 생성되는 끈적끈적한 검은 물질)계 탄소섬유와 자동차용 2층 도금강판, 희토류계 강력 영구자석, 능동진동제어시스템, 고온초전도체 SQUID의 개발, 광양제철소 조기조업 소프트웨어 모델, 제철용 고중량물 로보트, 조선용 TMCP강, 설비진단용 가속도 센서 개발 등등. 그렇지만, 아직 포항제철소 속에는 자동화할 처리와 더 나은 철강 개발 등 개발할 영역과 내용이 무궁무진하다. “아직은 철 생산에 필요한 설비들은 외국 수입 의존 비율이 절대적입니다. 연구소는 들여 온 기계를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응용할 것인지, 또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를 연구해야지요. 차근차근 노하우를 축적해 가면 우리도 더욱 많은 자체 고유 기술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는 이해영 박사의 진솔한 현실 진단은 산업과학기술연구소 호의 출항지점이다. 연구소가 갈 길은 연구소를 개괄적으로 소개하느라 보여 주었던 10여분 남짓짜리 비디오 프로그램에서 잡아낼 수 있었다. 비디오가 거의 끝나갈 무렵, 화면 가득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이란 글귀가 나타난다. 자원은 유한하다. 아무리 우리에게 자원이 부족하다지만 이런 문제는 많고 적음의 정도차만 있을 따름이지 자원의 유한성은 어느 나라나 부딪치는 공통된 위기이다. 그래서 각국은 대체 에너지 개발이다, 신소재 개발이다 야단법석을 떠는 것이다. 바로 이 야단법석에 산업과학기술연구소도 동참하고자 한다. 자원은 유한하고 창의는 무한하다. 요리도 마찬가지다. 같은 재료를 썼는데도 창의적인 일류와 뒤쫓는 이류는 다른 맛을 낸다. 산업과학기술연구소는 창의를 바탕으로 감칠맛나는 활용 기술들을 개발하는 철강 분야의 일류이고자 한다.
철광석으로 각종 철강 재료들을 만들어내는 제철산업은 쇳물을 만드는 과정인 ‘제선’, 시우쇠를 불려서 강철을 만드는 ‘제강’, 롤러로 금속덩이를 눌러 펴서 판자 모양이나 막대 모양으로 만드는 ‘압연’ 등의 크게 3가지 공정으로 나눈다. 제어연구실은 특히 ‘현장’과 ‘연구’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제어연구실은 철강 제작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제어 자동화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해영 박사팀이 91년 1월부터 거의 1년 6개월동안 연구를 진행, 개발에 성공한 ‘석회소성 공정의 퍼지 제어’는 대표적인 연구 성과이다. 석회 소성공정이란 석회석CaCO3을 1천~1천 3백도까지 가열하여 이산화탄소CO2를 발생시킨 다음, 원하는 생석회CaO를 뽑아내는 과정을 말하는데, 이때 뽑아낸 생석회는 제강 과정에서 쇳물을 전로에 넣고 정련하는 과정에 필요한 요소이다. 이 과정이 제강이다. 이때, 로터리 가마를 돌리면서 신경을 쓸 것이 원석 절출량, 압력 시간, 가마 압력, 가마 회전수, COG 유입량, 2차 공기량, 제품 배출 속도 등과 같은 일곱 부분이다. 특히, 버너에 투입되는 연료량, 즉 COG 설정값 결정에는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예전에는 COG값은 전적으로 숙련된 운전자의 경험에 의존해 결정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숙련된 사람이라고 해도 기계처럼 언제나 일정한 간격과 일정한 알고리즘을 유지하며 제어하기란 불가능하다. 여기에 이해영 박사팀이 개선을 위해 가동되었다. 제작 툴은 일본 후지전기에서 제작한 퍼지용 툴FRUITAX을 이용했고, 현장에서 숙련된 전문가의 경험적 지식을 바탕으로 COG 설정값 계산과정을 자동화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은 매번 정해진 시간에 기계처럼 사람이 제어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운전 부담을 줄이게 했다. 이로써 불규칙하던 제어 과정은 일초의 오차도 없이 정확해졌다. 퍼지 이론을 제어 과정에 도입한 것이다. “일본에서도 퍼지 이론 적용은 완성치 못했던 부분입니다. 저희가 완성한 것이죠. 사람은 기계처럼 규칙적이고 반복적일 수 없습니다. 제품의 불량률을 줄이려면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주장하는 이해영 박사는 이 시스템의 투입으로 철강 제조 공정 제어에 적합한 퍼지 제어 적용 기술을 확립하고 퍼지제어 기술 이전에 의한 현장 요원의 제어 기술력 향상, 퍼지 제어 관련 기술 수입 장지 등의 기술적 효과와, 수천억원에 이르는 경제적 효과를 기대한다고 연구 보고서에 적고 있다. 지금 현장에서 이용중이다. 두루 넓게 보고 들어야 합니다. 컴퓨터 자체로 뭔가 해 보겠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섭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른 전공 지식을 바탕으로 컴퓨터를 응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 더욱 필요한 시대가 될 것입니다. 아니, 이미 그런 인력들을 필요로 하는 곳은 너무 많습니다. 컴퓨터의 퍼지 이론을 철 생산 과정에 적용하는 데는 상당히 어려움도 많았다. 컴퓨터도 컴퓨터지만, 우선 철 생산 공정을 이해하는 것이 더 고생스러웠죠. 게다가 우리같은 시스템 연구부는 금속을 다루니까 금속에 관한 지식을, 기계로 제어하니까 기계에 관한 지식과 제어에 관한 지식을 알아야 함은 물론, 요즘은 컴퓨터의 다양한 개념들이 도입되면서 컴퓨터 공부는 필수가 되었습니다. 이젠 복합학문 시대입니다.” 시스템 연구부 제어연구실의 이해영 박사는 학교다닐 때 우연히 기계와 전기, 전자를 두루 배울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땐 불만도 많았는데, 흘러 돌이켜보니 꽤 도움이 됐다며 계면쩍게 웃는 그는 폭이 넓으면서도 깊은 지식 습득 자세를 강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