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호주에 온 지 1 년하고 2 주 정도 지났다. 호주 도착하던 때가 엊그제같이 생생한데 시간 참 빠르다. 작년 8월 7일에 비자를 받았고, 14일 아침에 시드니 공항에 내렸다.
나는 회사에서 보내주는 학술연수로 호주에 왔지만, 정말 오는 과정에서 정말 많이 고생했다. 사실 처음부터 호주로 올 생각은 아니었다. 그냥, 학술연수를 가게 되니 호주도 딱히 갈 마음은 없었지만 한 번 살펴보았다. 지금은 정말 호주 온 게 잘한 일이지만.
2025년 4월 중순~말 사이, 트럼프는 하버드 대학교와 상당한 갈등을 겪었다. 팔레스타인/유대인 문제였던가 다양성 문제였던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아예 유학생 안 받아버리는 거 아니야?” 당시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로의 유학을 결정하고 비자 인터뷰에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왠지 모를 불안감에 호주 대학을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호주 대학은 application fee 가 없다는 말을 어딘가에서 보았기 때문에 그냥 한 번 써보자-가 되었다.
대학에 영어 점수도 내어야 했는데, 나는 IELTS 는 보지 않았지만 토플 시험 성적을 이미 호주의 여러 대학들로 보냈었다. 그것은 첫 토플, 학술연수 대상자 선정 후 첫 토플 시험에서, 나는 ‘어차피 이건 첫 시험이고 아직 공부를 못했으니 진학하지 않을 대학에 보내자. Top 100 에 들어가는 대학들 중 호주 대학들에 다 보내두자’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후 본격적으로 토플 공부를 시작한 후에는 점점 점수가 떨어졌으니 결국 그게 최고 점수가 되었지만. (나는 아직 모른다. 내가 나이가 들어 공부가 효과가 없는 것인지 나에게 간절함이 없어서 공부가 안 되는 것인지)
Data Science 과정이 있는 학교 중 2 학기 모집을 하는 학교만 써보자-하며 보니 멜번의 Monash University 와 시드니의 The University of Sydney 가 있었다. Monash University 에 2년 과정의 Data Science 지원 후, 시드니는 1.5년 과정이지만 Data Science 에 지원했다. 시드니 지원 중, 마지막에 Application Fee 를 결제하라고 나와서 좀 고민했다. Application Fee 없는 줄 알고 지원한건데…라고 생각하다가 에이 그냥 지르자! 하고 결제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지원하고 며칠 지나니 합격했다고 전화가 왔다. (미국 대학은 전화 안 해줬는데..) 사실 나는 합격자 결정에 2~3 달은 걸릴 것으로 생각하고, 그쯤이면 미국 비자 인터뷰까지 끝난 후라고 생각했던건데, 너무 빨리 연락이 왔던 것이다. 고민중이라고 대답하자 Monash 대학의 담당자는 요새 트럼프로 인해 미국 대학 진학은 리스크가 있고 한국과는 거리도 가깝고 시차도 적다며 나를 꼬셨다. 일단 간다고 펜딩해둘까? 하고 보니 입학 허가서를 받으려면 미국 대학고는 달리 일단 등록금부터 결제해야 하는 것이다. 그냥 안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5월 말, Visa 인터뷰 신청 준비를 모두 끝마쳤다. 계속해서 오류나는 웹사이트에서 며칠간 고생한 끝에 데이터도 모두 입력했다. ‘마지막으로 오늘 회사에서 가서 최종 점검하고 제출하자’ 하며 새벽에 잠들었다. 아침에 학교에 가니 “비자 인터뷰 전면 중단” 뉴스가 떴다. ‘지금이라도 호주로 가겠다고 할까? 하지만 유학생을 아예 안 받을 수는 없을 것이야. 조금 더 기다려보자.’ 나는 비자 인터뷰가 재개되자마자 인터뷰를 하기 위해 여러 뉴스/비자정보 사이트를 스크랩하여 관련 뉴스가 뜨면 Telegram 으로 알람이 뜨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돌렸다. 그리고 비자 사이트를 수시로 refresh 하여 빈 자리가 생기면 스피커로 음악이 재생되며 Telegram 으로 알람을 보내주도록 만들었다. 사이트는 봇 탐지 기능이 있어 비동기 브라우저 제어 라이브러리를 사용하고, AI 로 captcha 를 넘어야 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회사에서 화장실 다녀오는데 내 컴퓨터에서 음악이 울려퍼지고 있어 당장 달려가 맨 첫 자리로 인터뷰를 예약했다. 1주일 후 인터뷰. 성공이었다.
6월 말, 인터뷰 자리에 갔다. 영사와의 인터뷰. 문제는 내가 이미 석사 학위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질문을 미리 예상했기에 이번에는 다른 전공 석사 학위이며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회사의 지원 하에 다녀와서 회사에서 그 분야에서 일할 것이라는 것을 설명했지만, 영사는 “나는 오늘 니 비자를 승인할 수 없어..”라며 회색 종이를 주었다. 눈앞에 캄캄했다. 유학원에 가서 상담을 받았다. “나이도 있으시고 학위도 필요 없어보이는데 이공계라 STEM 3년의 취업 기회도 있는 데다가 온 가족이 함께 가니 영사가 귀국 의사가 없다고 의심할만합니다.” 비자 인터뷰 거절자 단톡방에 들어가보니 내가 인터뷰한 그 영사에 대해 성토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영사 운도 없었던 것이다.
바로 Monash 대학과 시드니 대학에 지금이라도 진학할 수 없을지 문의 메일을 보내고, 회사에도 알렸다. 바로 다음날이 인사발령일이었으니까. 다음날 시드니 대학에서 메일이 왔다. “미안한데 이번 학기는 안 돼. 하지만 우린 너를 돕고 싶어. 너 다음 학기에 입학하면 안 되니?” 안 될 말이다. 나는 25년 하반기에 진학하는 것을 조건으로 연수 대상자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5 분 후 다시 메일이 왔다. “바로 메일 다시 보내서 미안한데 내가 메일 보내놓고 그 사이 알아보니 너를 받아줄 수 있대. 여권 스캔 보내주면 바로 합격통지서 보내줄께” 그렇게 나는 18개월의 데이터 사이언스 석사 과정 입학허가서를 받았다. 그리고 며칠간 메일을 주고 받은 후에 24개월의 컴퓨터 사이언스 석사 과정(데이터 사이언스 스페셜라이제이션)으로 변경했고, 또 자격 요건(토플 점수 등) 충족으로 20% 의 장학금이 적용된 입학허가서를 받았다.
바로 비자 신청에 들어갔다. 남은 시간은 약 1개월. 하루라도 빨리 받기 위해 서둘러 움직였다. 처음엔 바로 나올 줄 알았다. 5분 안에 나오는 사람도 있고(주로 교환학생) 2주 안에 나오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4 주만에 나오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주로 요리학원 등) 몇 달이 걸리기도 했다. 동남아 학생들은 몇 달은 기본이었다. 나는 많은 나이와 온가족이 다 간다는 것, 미국 비자 거절 이력 때문에 상당히 걱정되었다.
하루가 지나도 안 나오고 2주가 지나도 안 나왔다. 3주가 지나자 학기가 시작되었다. 5주차까지 비자가 안 나오면 나는 입학할 수가 없다. 미국 가기로 했던 날짜에 맞춰 살던 아파트도 월세 주고 나왔고, 차도 팔았으니 온가족이 회사 앞 오피스텔에서 여름 휴가도 가지 못하고 조마조마해하며 비자만 기다렸다. 다행히 4주차가 되던 8월 8일에 비자가 나왔다! 바로 회사에 알리고 연수 발령을 내달라고 했다. 회사에서는 이미 학기가 시작되었다는데 갈 수 있는 게 맞는지 의심했다. 미국은 학기 시작 후에는 보통 입국 자체가 안 되니까. 각서까지 쓰고 8월 13일 비행기를 탔다. 8월 14일 아침에 도착해서 에어비앤비로 잡은 숙소에 짐을 풀고 학교에 가 수업을 들었다.
고생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는 학교에 막 와서 아무런 오리엔테이션도 없이 거의 2주간 수업도 못 들은지라 수업도 따라가기 힘들었고, 아들은 아예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었다. 주소가 있어야 학교에 갈 수 있는데 그 주소를 얻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집을 보러 다녔지만 마음에 드는 집도 잘 없고, 신청해도 경쟁자가 몰려 떨어졌다. 한국과는 달리 매물이 나오면 수십명의 경쟁자가 지정된 시간에 가서 집을 보고 입주 신청을 해야 했으며 부동산과 임대인은 신청서에 포함된 자기소개서, 급여명세서, 지인 추천서 등등 수많은 서류를 보고 임차인을 고르는 것이었다.
보름만에 켄싱턴에 간신히 집을 구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 이미 한국 학교에선 2학기 개학한 지 열흘 정도 지났고, 체험학습 기간도 다 써버린 후였는데 다행히 하루 결석 후 학교 입학해서 한국 학교로부터 전학 허가서를 받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신변에 이상이 있지 않은지 확인하기 때문에 무적 상태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9월부터 생활이 점점 안정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