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에는 회사를 옮기느라 가을이 오는지도 모르게 떠나보냈는데,
어제는 퇴근길에 갑작스레 추워진 기온에 가을이 강력해졌음을 느끼게 되었다.
오늘도 어제보단 덜하지만 꽤나 쌀쌀한 날씨에 퇴근을 하였는데,
버스 안에서 자다가 깨어나 바라본 창밖은 정말 가을에 덮여있었다.
창밖의 거리는 차가운 빛을 띄고 있었고,
오가는 사람조차 적어 그저 적막할 따름이었다.
사람을 짜증나게 만들던 더위는 언제 지나가버린 것인지,
어느새 감상적이게 만드는 저 가을이 곁에 와버린 것이다.
3년 전 늘 거닐던 생각의 거리조차도 낯설게 보였고,
그 거리는 내가 아닌 다른 무서운 존재의 것이 된 것 같았다.
5년 전, 결정의 갈림길에서 느꼈던, 그 낯익은 곳의 낯선 느낌을
오늘 다시 생각의 거리에서 느낀 것이다.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벨을 찾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은,
벨의 위치가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느낌이 새로워서였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이 어디 있는지를 한참 찾은 것 역시,
늘 같은 곳에 있던 것이지만, 새로운 느낌으로 여기저기 찾아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정신이 몽롱한 것은, 한꺼번에 모든 것이 새로워졌기 때문에
그것들을 받아들이느라 그렇다고 생각하게 될 뻔 했다.
그때 내가 그 모든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깨닫게 된 것은,
오늘 저녁엔 베이컨 모듬과 함께 소주 석잔을 반주로 걸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술김에 본 가을은 나를 기억상실증 환자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