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드에게 면목이 없다.

2006년 10월 11일 at 9:23 am

지금 생각해보면 타드에게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 하나 있다.
언젠가 타드의 스피킹 시간에 북한 문제를 모두 미국의 책임으로 돌려 타드의 표정을 굳게 한 일이 있었다.
미국인으로서 미국인의 관점으로 미국의 뉴스를 접해온 타드로서는,
비록 그가 비주류인 '게이'이며 진보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나의 발표는 미국에 대한 맹비난으로 들렸을 것이며, 그가 나의 발표 후 그렇게 쉽게 입을 열지 못했던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먼저 한국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고, 한국이 분단된 원인을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 그리고 일본의 탓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북한의 체제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고, 북한이 불량국가가 된 원인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북한은 6.25 이후 황폐화된 작고 빈곤한 국가이다.
북한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들과의 교역이 필수적인데,
소비에트 연방이 80년대 들어서 자본주의화되고, 무너져버렸다.
세계가 자본주의화되어가는 가운데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고,
설상가상으로 미국의 적국이기 때문에 쉽사리 여러 나라들과 무역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북한은 값싼 노동력에도 불구하고 투자도 받을 수 없었고, 일거리를 찾을 수 없었으므로
수십만 내지 수백만명이 굶어죽게 되었다.
그들은 체제의 보장과 인민의 생존을 원했고,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적국으로서의 세계적인 제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북한을 불량국가가 아닌 정상적인 국가로 바꾸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북한을 계속 압박할 것이 아니라,
북한을 적국으로 대하지 않고 경제제재를 풀어주어 북한이 발전과 함께 온건한 국가가 되는 것을 지켜보면 된다.
이러한 나의 발표에 대해 혹자는 north korea에서 왔느냐고 묻기도 했고, 또 다른 이는 미국도 이런 걸 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어찌되었거나 침착하려는 타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은 흥분을 모두들 눈치 챌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안 좋은 평가를 각오하긴 했지만, 타드는 멋있는 남자라서(게이지만),
“새롭고 흥미있는 관점에 대해 이야기해주어서 고맙다”라고 얘기하고 다음부터는 나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아주었다.
토론 시간에 나를 한동안 자신의 조에 끼워넣고, 나의 영어 실력의 발전에 자주 칭찬을 하기도 하였다(당연하다 나는 7년간 영어공부를 하지 않은 영어맹에서 시작해서 1달만에 7년 전의 실력을 되찾았다).
그가 가르친 두 과목에서 Most Improved 상도 나에게 주었다.
그가 나의 발표에 수긍을 했건 안 했건, 매우 쿨하게 받아들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듯 하다.
아무튼 이러했는데, 결국 북한은 핵실험까지 해버렸으니, 타드가 한번쯤 나의 발표를 되새겨봄직도 하다.
그때 Kay는 북한 문제를 대화로서 해결하자고 했는데 저런 악질적인 북한과 대화가 어디 통하겠어! 라고..
혹은 아예 잊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대화만 해줬어도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텐데,
신앙심 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는 조지 W. 부시로서는 종교의 적인 공산주의 국가와 타협하기 힘든 것이 당연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