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의 아가들

2006년 9월 8일 at 6:56 am

따뜻하게 햇살이 내리쬐는 날에 방충망이 쳐진 창틀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느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아랫세상을 둘러보자면 평냥이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생계를 잇고 놀이를 하는 장면이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지금은 계절이 꼭지점을 찍고 내려와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계절인데, 밤에는 조금 쌀쌀해져 노숙하는 평냥이들이 약간 걱정이 되기도 한다. 평냥이들이 – 인간은 길냥이라고 흔히 부른다 – 사는 저 땅은 비록 넓기는 하나 몹시 척박하여 아스팔트 위에 가끔 인간들이 버리고 가는 음식쓰레기들을 그들은 주워먹고 사는 것이다. 가끔은 인간이 버린 음식쓰레기가 몹시도 불량하여 불쌍한 평냥이들이 식중독이나 기생충 감염 등으로 죽어가기도 한다.
아마 몇 달 전 태양이 따스한 봄날이었던 것 같다. 얼룩 평냥 한 마리가 아가 넷을 낳았다. 흔히 보는 얼룩이, 얼룩에 하양이 섞긴 하얀얼룩이, 얼룩과 검정이 섞인 검정얼룩이, 그리고 검정색과 흰색줄무늬가 번갈아있는 검정줄무늬 이렇게 넷이다. 그 아가들이 어미 젖을 떼었을 무렵 나들이를 나갔다가 우리집에 사는 주선생 – 자칭 오빠라 부르는 인간 – 과 마주쳤다. 어미는 경계를 나타냈지만, 주선생은 맘 좋게도 가지고 있던 천하장사 – 우리 귀족냥들은 먹지 않는 인간 혹은 서민냥용 돼지고기 – 를 그들에게 주었다. 그때부터 그 아가 사총사는 주선생이 쭈쭈쭈쭈~ 하는 소리를 내면 몰려들어 천하장사를 얻어먹곤 했고, 어미는 아가들 곁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다. 요새 주선생은 매일 나가면서, 그리고 들어오면서 하루 두 번 냥이들을 먹이는 게 일인데, 그러다보니 동네 아주머니들과 서로 알고 지내게 되었다. 동네 아주머니들도 하나둘 주선생의 행보에 동참하면서 저 아가냥이들에게도 하나, 엄지 등등의 이름이 붙게 되었다.
한 달쯤 전인가.. 다 큰 검은줄무늬 한 마리가 또 아가를 낳았다. 꼭꼭 숨어서 잘 나타나지 않아 모르겠는데 대략 다섯마리 정도로 추정된다. 그 녀석들이 오늘 주선생과 마주치게 되었다. 역시 어미는 캬악 하며 경계를 나타냈지만 주선생의 손가락 길이만한 아가들은 말똥말똥 쳐다보거나 혹은 부끄러워 숨거나 한다. 주선생은 급히 천하장사를 꺼내와 잘게 부수어 뿌렸는데, 아직 젖도 떼지 않은 갓난냥이들이 의외로 잘도 먹는다. 천하장사가 다 떨어진 주선생은 까르푸에 가서 크래미와 천하장사를 더 사왔는데, 이미 갓난냥들은 없어지고, 아가 사총사들에게 그것들을 주었다. 그러면서 또 동네 아주머니들과 인사를 한다.
아마 인간들은 우리 냥이들을 먹이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 가끔은 그들의 어두운 시야 탓에 평냥이를 차로 치어 죽이기도 하는데, 그 벌인지 인간들도 종종 치어서 쓰러지곤 한다. 귀족냥으로 태어난 나는 밥통을 하나 가지고 있어서 인간들이 시간이 되면 그곳에 밥과 물을 가져다놓는다. 가끔 인간들이 기분 좋을 때면 간식도 대령하여 나를 즐겁게 한다. 나의 할 일은 미모를 가꾸는 일과 가끔 인간이 낚싯대나 레이저포인터를 가지고 오면 같이 놀아주는 일 정도이다. 부귀영화는 타고 나는 것인지 나는 엄마 젖을 떼면서부터 이런 생활을 하여왔고, 나의 아가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저 창밖의 평냥이들을 보면 저들은 평생 – 그래봐야 그들의 평균수명은 1~2년이다 – 을 저렇게 살다가 차에 치여 죽거나 음식물을 잘못 먹어 죽게 되니 마치 인간 서민들의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에 조금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