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동산 문학

2005년 5월 29일 at 4:37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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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컴퓨터가 문학 환경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면, 우선 그 구체적인 흔적을 우리는 PC통신문학, 혹은 사이버 문학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 새로운 문학의 흐름을 예감한다.

w:> 새로운 흐름? 아마도? 아직 속단하긴
힘들지만, 정보화 시대의 전위적인 퍼포먼스 양식으로 PC통신문학을 꼽는데 나도 주저하지 않겠다. 그것은 순간을 포착하고 순간을
나누는 정보문화 소통 양식의 한 형태이다. 기존의 종이책 문학과는 분명히 다르다. 순간 포착의 전위는 때때로 매우 날렵하고,
빠르고, 깜짝놀랄만 하고, 자극적이기도 하다.

j:> 먼저, 'PC통신문학'이라는 용어부터 정의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w:>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잠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일단 넓은 의미. 책이라는 고전적 미디어가 아닌 컴퓨터 화면이라는 뉴 미디어를 통해 접촉한다는 코드의 변화에
따라 규정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컴퓨터 화면을 매개로 한 소통 중심으로 생각하면, 고전적 양식의 문학부터 새로운 문학까지 모두를
포괄할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소통 가능하니까.

j:> 너무 포괄적이라서 정의로서는 매우
미흡하다. 좁은 의미로 엄격하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컴퓨터'라는 새로운 문학(문명) 환경 조건과, 디지탈 자연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 스토리, 작가와 독자 사이의 '통신'이라는 대화적 상호작용의 측면이 중요하지 않을까?

w:> 옳은 지적이다. 컴퓨터와 더불어
상상하며 새로운 사이버 스페이스, 혹은 하이퍼 리얼리티의 세계를 이전의 문학 경향과는 달리 전위적으로 실험할 수 있으며, 그런
문학 내용과 형식들을 작가와 독자의 열린 소통 체계 속에서 형성해나가는 문학이라고 하면 어떨까. 기존의 닫힌 체계와는 달리 창작과
향수가 분리되지 않고, 컴퓨터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거의 동시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한 문학 형태 말이다. 이렇게 좁혀 보면 문학의
소통 경로만을 강조하는 것 같은 PC통신문학이란 말보다는 사이버 문학이란 말이 더 적당할 것 같다. 지금 우리 수준은 PC통신문학에서
사이버 문학으로 나아가고 있는 정도이다. 용어야 어떻든 현단계에서 생각할 수 있는 몇몇 특성들을 열거해 보자.

j:> 우선, 컴퓨터라는 전자 매체의
힘에 의해 기존의 국부적이고 폐쇄적인 소통 체계를 일거에 열린 형식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PC통신문학은
모뎀만 가지고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문학 광장이다. 거기서 각 개인은 자신의 표현 욕망을 마음껏 발휘한다. 물론
통신망 관리기구에서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일정한 통제를 하고 있지만, 그 기준이 매우 유연한 것이고 보면 비교적 자유롭게
자기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잇점이 있다. 즉 누구나 자기 표현의 욕망만 있다면 일정한 등단 절차 없이도 작가가 될 수 있고,
나름의 독자들을 확보할 수 있다. 또 ID를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공개적으로 신원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익명성의 바다를
항해하는 듯한 자유방임의 감각도 체험할 수 있다.

w:> 익명성의 측면에서는 문제도 많다.
익명성에 의한 표현의 지나친 자기방임이 수준 저하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컴퓨터 화상을 통한 대화적 상호작용은
작품 창작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까도 말했던 것처럼, PC통신문학은 처음부터 닫힌 완결성을 배제한다. 작가는 통신을 통해 글을
올리는 가운데 독자들의 의견과 정보를 최대한 수렴하는 융통성을 보이기도 한다. 즉 자기 독자들의 성향과 정보의 양과 질에 따라
다른 줄거리로 이야기를 끌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구비문학 시대의 적층문학이 그랬듯이 공동창작의 가능성도 열린다.
작가 하재봉 씨를 중심으로 통신망 작가들이 이를 시도한 바 있지 않은가. 통신을 통한 정보의 대화성은 컴퓨터 시대의 새롭고 탄력적
구비문학으로 진전될 수도 있다. 또 창작 과정에 독자가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소설 속의 한 인물이 되어 가상 현실을 직접 만들거나,
특정한 상황만을 조작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직접 참여하는 하이퍼 픽션의 등장도 예상되는 경향이다.

j:> 내용 면에서 부분의 독자성 경향이
현저해진다. 구비문학 시대의 판소리가 완창만이 아니라 부분창으로도 존재했던 것처럼, 기승전결이라는 이야기의 전체적인 맥락과 관계
없이도 어떤 부분이 독자적인 화면으로 탄력적인 소통 효과를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섹슈얼리티 문제 같은 감각적인 소재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리라. 이는 이미 지적한 바 있듯이 인간 삶에 대한 전면적 진실 혹은 전체성의 감각을 둔화시키는
쪽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과학적 상상력을 기조로 한 극적인 SF쪽이 점점 더 많은 통신문학 공간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w:> 형식 측면에서의 파격도 예상된다.
멀티 미디어 기능을 십분 활용한 이질혼성, 내파외합의 스타일 실험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자유는 통신에 참여하는 작가들이
아직은 대부분 아마추어 작가들이기 때문에, 그 실험은 매우 파격적으로 진행될 수 소지가 많다. 그것은 새로운 문화 장르의 창조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문학의 정체성 혼돈으로 치달을 수도 있겠다.

j:> 현재 국내에는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등의 통신망에서 통신문학이 움직이고 있다. 여러 문학동호회나 게시판을 통해 지금도 이런저런 문학들이 움직인다. 이미
통신문학을 통해 많은 작가들이 배출되기도 했고, 또 많은 작품들이 출판되어 종이책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w:> PC통신망이 개설된 초기에는 주로
채팅을 통한 잡다한 수다떨기거나 정보 주고받기가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차츰 자기가 쓴 글들을 올리기 시작했고, 그 반응에
민감해지기 시작하면서 통신문학이 활성화되었다. 통신망 작가로 최초의 성공을 거둔 이성수 씨가 {아틀란티스 광시곡}이라는 SF를
천리안 게시판에 올린 것은 1989년 12월의 일이었다. 그 뒤 {우먼 Q} {바이러스 임진왜란} {스핑크스의 저주} 등이 계속
통신망의 인기를 얻었고, 종이책으로도 출판되었다.{스핑크스의 저주} 같은 경우는 매번 3천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j:> '퇴마록 현상'의 이우혁 씨도
거론될만 하다. 1993년 7월 20일, 하이텔 '공포/SF'게시판에 {퇴마록}을 올리기 시작해 2년여 동안 통신 독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또 {하이브리드}로 제1회 컴퓨터통신문학상을 수상한 염승호 씨, {너 남자 맞아?}의 이재연 씨 등과 천리안
문학동호회 푸른산책길(liter)을 주도하다가 {버전업}이라는 사이버 문학 잡지를 창간한 통신문학비평가 이용욱 씨 등이 괄목할만한
활동을 펼쳤다.

w:> 통신 작가들은 대부분 독자들의
즉각적인 반응과 평가를 통신문학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고 있으며, 그밖에 자유로운 상상력과 새로운 문체 시도, 자유경쟁의 스릴감,
속도감 등을 중시하고 있다.

j:> 이들의 작품 중 주목할만한 것들은
SF계열의 작품들인 것 같다.

w:> 그렇다. 이성수 씨는 {스핑크스의
저주} 등 대부분의 소설들에서 유전공학을 비롯한 과학의 발전으로 과학적 신화가 파격적으로 전개될 미래 상황을 설정해 놓고, 그
상황이 지구와 인류의 운명에 치명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다시 말해 과학과 컴퓨터가 인간의 운명을 자칫 거스를
수 있는 상황에서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인간적 프로메테우스의 진지한 노력을 형상화하면서, 현재적 수준에서도 과학의 윤리적 태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설파하고 있다는 것이다. 염승호 씨 역시 기본 태도면에서 비슷하다. {하이브리드}는 작가
스스로 SSF(SoScientific Fiction)라고 부르고 있거니와, 유전공학과 법학 쪽의 전문적이면서도 다채로운 정보를
십분 활용한 과학소설이다. 과학의 진보가 진정한 인간정신과 결별할 때 생길 수 있는 가공할만한 폭력성에 대해 큰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렇게 인문적 상상력에 토대를 둔 채 인간성 회복, 원초적 자연 상태의 회복을 소망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컴퓨터 시대의
문학적 역설일지도 모른다.

j:> PC통신문학은 컴퓨터가 새롭게
조성할 수 있는 문학 환경의 전위적인 형태임에 틀림없지만, 아직은 형성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부 전문 작가들이 참여하는
하이텔 문학관을 제외하면 대부분 아마추어 작가와 독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은 새로운 가능성이면서 동시에 취약점이기도 하다.
문학의 전문성과 진정성에 대한 고려가 그만큼 약하다는 얘기다.

w:> 중요한 지적을 j님이 해주었다.
문학의 전문성과 진정성에 대한 고려가 배제되면 PC통신문학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할 것이다. 다산성, 속도감은 놀라운 일이나,
베끼기나 흉내내기, 형상화되지 않은 감정과 상상의 선정적 범람은 문학의 저급화를 초래한다. 또 작가의 아우라를 상실하게 될 것이며,
문학 그 자체의 극단적 위기를 초래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위기를 넘어서 점차적으로 긍정적인 계기들을 찾아나가지 않겠는가.
희망적인 조짐 하나를, 나는 하이텔의 '꿈동산'에서 발견한다. 정보화 마인드 함양과 바람직한 통신문화의 정착이라는 취지로 개설되었다는
교육 정보 통신망인 '꿈동산'에서 어린이들이 다양한 글읽기와 글쓰기 훈련을 하고 있다.

j:> 그 어린이들에 의해 문학의 지도가
새롭게 그려지겠는가?

w:> 글쎄, 섣부른 예상을 할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은 어쨌거나 디지털 시대의 주역이 될 것이며, 그들에 의해 디지털 제국에서의 인공화학적인 감각의 합성 지도가
새롭게 그려질 것은 틀림없을 것 같다. 그 지도가 엄밀한 의미에서 문학의 형태를 띨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에서 실제
인간이 시뮬레이션 인간과 맞씨름하는 가상적 현실을 놓고 인간적인 고뇌를 벌이는 이야기도 그 감각의 지도에 포함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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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하자.

w:> 희망적인 조짐 하나를, 나는 하이텔의 '꿈동산'에서 발견한다. 정보화 마인드 함양과 바람직한 통신문화의 정착이라는 취지로 개설되었다는 교육 정보 통신망인 '꿈동산'에서 어린이들이 다양한 글읽기와 글쓰기 훈련을 하고 있다.

우연히 찾은 이 글에서 꿈동산의 문학을 언급하는 글을 보고 반가웠다. 중학생들까지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던 꿈동산에서 문학은 꽤 인기였다. 많은 학생들이 소설 또는 수필 등을 읽고 썼다. 나 또한 그 중 하나였는데, 당시 '애들영웅전설', '신애들영웅전설', '함박눈' '우주소년 아무개(기억 안 남)' 등의 글을 쓰곤 했다. 내가 기억하는 바 당시 가장 뛰어난 글을 쓰던 아이는 천재소녀 윤지효(현 서울대학교 법대 4학년)이었다. 초등학생답지 않은 글을 쓰더니 중학생답지 않은 글을 마구 마구 써내는 것이었다. 그가 문학을 공부했더라면 무언가 큰 작품을 남기지 않았을까.

아무튼, 1996년의 글을 이제서야 이렇게 우연히 찾게 되었다. 나의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는 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