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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본의 볼륨을 높여요~!

  • 기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첫 평일날, 난 종석이와 함께 동산학원이라는 곳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집에서 학원 버스를 타고 바로 가도 15 분 정도를 가야하는 곳이었는데, 평범하지도 않은, 우리 학년 모두 합해도 두어명뿐이었던 그곳을, 나는 버스를 타고 돌아돌아 40 분 정도 걸려가며 다녔다.

학교에 다녀와서 잠시 컴퓨터를 붙잡고 있다고 학원 버스를 타면, 막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가 시작하고 있었다.

평소 라디오는 거의 듣지 않았는데 섹시한 이본의 깜찍한 목소리에 홀려서, 그리고 그것을 듣지 않으면 맨 처음 버스를 타는 나로서는 별로 할일이 없기에 귀기울여 들었다.

아, 그 시절 이본의 목소리는 학교와 학원에 지친 나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그런 것이었다. 시청자들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어찌 그리도 깜찍하게 읽어주는지~

그러곤 고3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잊고 지내다가 최근에 산 mp3 플레이어로 fm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ㅡㅡ; 저녁때마다 들리는 것이 그리운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다.

내가 고등학교때부터 들었으니 이젠 서른은 되었음직한 이본이건만, 아직도 예전처럼 깜찍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녀의 여전한 목소리를 들어보건대, 아마도 그 사이 나이를 먹은 것은 나뿐인 것 같다. 그녀는 그대로인데 고등학생이던 나는 어느덧 나이를 먹어 (곧 죽어도) 스물이 되었으니 말이다.

궁금하지 않았던, 이본의 프로필이 궁금해져 살펴보니 1998년에 27살로, 이젠 32살은 되었지 싶다. 앗! 이본은 아직 젊은 처자가 아니었던가? 어느덧 나이를 그렇게 먹었단 말인가? 이본의 프로필을 살펴볼 정도로 나도 나이를 먹었지만 이본은 이미 적당한 혼기마저 넘긴 나이가 되었다.

볼륨을 높여요를 재미있게 듣다가 결국 떠오른 것은 엣 시절의 추억이고, 깨달은 것은 그간 흘러버린 세월이었다. 시간이 야박하달만큼 빨리 흘러버린 그 세월에, 나는 이리도 많은 일을 겪었는데 그녀는 그때와 다름없는 모습!

누군가 나를 5 년 후에 다시 보게 된다면, 어떻게 느낄까? 많이 변했다고 느낄까? 그대로라고 느낄까? 좀 더 멋있는 내가 되고 싶긴 하지만, 한편으론 변하는 것이 싫다. 지금의 내 모습이 얼마나 좋은데.

결국 이본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세월의 흐름과 사람의 흐름이 다르다는 것이다. 급류처럼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도 어떤 사람은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고, 어떤 사람은 더욱 멋있는 모습이 되나, 어떤 사람은 그가 가진 매력들을 잃어버리고 가까이 하기 싫은 모습이 되기도 한다.

시간의 흐름, 그 속에서 나는 나의 모습을 지켜나가야 한다. 내 모습을 지켜나가면서 하나씩 아름다운 것들을 마음 속에 줏어모아야 한다. 항상 마음을 정돈하면서 쓰레기들을 모아 버려야 한다. 그렇게 한참의 세월이 흘렀을 때, 나는 더 멋진 스무살 광석이가 되어있겠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獨也鯖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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