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날들에 대한 회상.. 미영이 생일날..

2002년 6월 3일 at 12:57 am

(※ 사진:1998년 8월 어느 날의 스티커 사진. 왼쪽부터 은영, 호영, 미영, 광석)
가끔 아침에 일어나면 뭔가 어렴풋이 기억나는 게 있다. 흑백영화는 아닌데 흐릿한 것이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 기억에 촛점을 맞추다 보면 하나 하나 선명해지면서 한 편의 고요한 영화가 완성된다. 오늘 아침부터 머릿속을 가득 메운 그 기억의 시절은 순진으로 도배된 나의 대학교 1 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1998년 여름, 자전거 여행도 끝나고 빵점학교도 끝난 그리 덥지는 않은 어느 여름날 과천이었다. 6 살 때 암사동에서 스케이트를 신은 채 외삼촌 등 꼭 잡고 얼음판 위에서 미끄러지던 그 기억 이후로 처음으로 그 날 난 스케이트를 탔다. 미영이의 초대를 받아 간 과천 구민회관 아이스링크장. 인원은 미영이와 은영, 나, 호영, 현우, 민아 등이 있었던 것 같은데 더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이 중 미영이의 절친한 친구인 은영을 제외하고는 자전거 여행을 함께 갔던 멤버이기도 하다. 스케이트를 사실상 처음 타본 나와 호영은 얼음판 위에서 상당히 고전해야 했다. 도무지 믿을 수 없게도 우리는 얼음판에 당당히 나설 수 없었던 것이다. 자꾸만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지고 자빠지고 발목이 꺾이고.. 타기 전의 자신감은 어디로 갔는지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래저래 자세를 바꿔가며 시도해봤지만 계속해서 마찬가지였다. 다른 아이들은 잘 탔는데 난 타지도 못하는 실력에 그들을 쫓느라 무척 애썼던 기억이다. 막 달려서 누군가를 밀곤 하기도 하였고, 나를 밀어 넘어뜨리려는 상대로부터 한참을 도망가기도 하였다. 그 중 기억나는 장면 하나는 미영이에게 밀려 넘어진 나, 그에 대한 복수로 미영이를 밀치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던 나, 그리고 여유롭게 슬슬 도망가던 미영, 드디어 미영이를 밀치는 나와 가소롭다는 듯이 빠져나간 미영, 그리고 넘어지는 나. 그것을 보며 으하하하 즐거워 웃던 미영. 그렇게 웃다가 웃다가 주체하지 못하고 넘어지던 미영. 그 사건으로 미영이 무릎엔 한동안 깨진 상처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호영이도 결국 포기하고 나만이 끝까지 정복하겠다고 링크 위를 열심히 달렸지만 결국 정복하지 못하고 친구들에게 이끌려 과천 공원으로 갔다. 사실 난 그날이 미영이 생일인지 모르고 있었다. 누군가 사온 (미영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케잌으로 생일 축하를 하고 맥주를 약간 마시고는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다. 사실 그 날 하도 피곤해서 과천에서 쌍문동까지의 그 기나긴 길을 어떻게 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후 몇 번 더 가 본 바로는 상당히 고달펐던 기억이 있다. 공원이라는 퍼블릭한 공간에서 중앙의 정자 하나를 점령한 채 맥주라는 술을 마시던 기억은 믿을 수 없이 순진했던 나에겐 상당한 문화적 충격이었다(당시 나는 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없는 나이이기도 했다). 나의 첫 방학은 그렇게 끝나갔고, 그 방학동안 나는 수많은 혼란과 혼돈에 빠져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인생관의 상당한 변화를 겪기도 했고, 크고작은 변화들을 내 마음 속 깊이 간직한 채 지금까지 살아왔다.

잃어버린 날들에 대한 회상.. 미영이 생일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