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외로운 섬에서 군도로..

  • 기준

대학을 마친 후로 내게 술자리는 주로 한달에 두어번 있는 호랭군과의 술자리 정도가 대부분이었지만, 2009년엔 그렇지 않았다. 당시 내겐 힐링이 필요했고, 회사에서 주어진 새로운 격무는 탈출을 꿈꾸게 만들었다. 퇴근하면 바로 대학로나 홍대, 노원으로 향했고, 어서 취해버리겠다는 생각으로 마시다가 다음날 침대 위에서 정신을 차리곤 했다. 서둘러 출근하다가 중간에 내려 화장실 가서 지난 밤의 전과를 확인하기도 했지.

2008년 가을 건강검진에서 나는 처음 지방간 판정을 받은 바 있었다. 이 젊은 나이에 지방간이라니, 내가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었다니(…)  하지만 2009년 엄청난 알콜을 흡수하는 힐링(actually, rehabilitation)을 통해 1년 후에는 지방간 완치판정을 받아냈다. “문제 없네요” “지방간이 있지 않나요?” “지방간 없습니다. 아주 정상입니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어내며 버틴 1년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짝을 찾았고, 지금까지 살던 곳과 멀리 떨어진 새로운 세상에 둥지를 틀었다. 그랬더니 퇴근시간이 가까워져도 나를 찾는 이가 거의 없어졌다. 동아리 선후배들, 학교 친구들에게 술 마시자는 연락이 무척이나 뜸해졌다. 풍요(결혼) 속의 빈곤(친구)랄까?

그 빈곤의 바다에서 내 모습을 보니 나는 회사에서 섬이었다. 육지와 단절된 섬. 그나마 이웃에 몇 개의 섬이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브릿지는 관리되지 않아 끊어지기 직전이거나, 연결하려다 만 브릿지의 흔적이었다. 나는 지금껏 회사 사람들과 친해지기를 거부했고, 동질성을 갖지 못했다. 그게 좋았다. 나만의 세상을 즐기는 것이.

이제서야 느끼는 것이지만, 앞으로 내 인생 중 지금껏 내가 살아온 만큼의 긴 시간은 대부분 회사 사람들과 보내게 될 것이다. 그 속에서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고 억지로 단절해가며 살아간다면 얼마나 재미없을 회사 생활일까?

최근에 조금씩 직장 동료들과 함께 식사하는 기회를 늘리고, 술을 마시며 놀기 시작했다. 섬에서 군도로나마 영역을 확장하고, 섬의 주변을 탐험하며 내 인생의 영역을 넓혀가고자 한다. 이스턴 아일랜드같은 고독한 섬보다는 아키펠라고의 섬이 되어 이웃의 과실을 함께 맛보고 노를 저어 캠프파이어를 함께 즐기고, 다리를 건설하여 널리 소통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단, 적당히만.

광란의 밤
2008년 부서 워크샵
스카 사람들
스카 사람들
통영 노동교육
통영 노동교육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